[아침뜨락] 최병부 ㈔한국문인협회 서산지부장

내 고향은 바닷가인 충남 태안군 남면 양잠리(兩潛里) 마을인데 골짜기가 많다 하여 잠곡리(潛谷里)이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옛날에 장씨와 고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살았다 하여 장고리(張高里)라고도 한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많이 변해서 누에 치는 농가도 없고, 장씨와 고씨 성을 가진 사람들도 모두 떠나서 없다. 장고리에서 언덕만 넘으면 바닷가인 적돌만(積乭灣)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적돌만에 자주 가서 해산물을 잡았으며, 나도 시간만 나면 적돌만을 찾아가곤 했다.

바닷가에서 자란 나는 해산물을 자주 먹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박하지(돌게)라는 게 찌개를 유난히 좋아했다.

갓 잡은 박하지에 애호박과 풋고추를 송송 썰어 넣고 끓인 박하지 찌개는 그 맛이 일품이다. 어린 나는 적돌만에 가서 구렁뱅이 개울의 커다란 돌 밑을 맨손으로 더듬어서 박하지를 잡곤 했는데, 돌을 들어 올리면 돌 속에 숨어있던 박하지가 엄지발가락을 커다랗게 벌리고 날렵하게 도망쳤다. 그래서 양손의 촉각으로 돌 밑을 더듬으며 게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재빨리 박하지의 등짝을 엎어눌러서 잡곤 했다. 어떤 날에는 아예 개울 막이를 해서 박하지를 잡기도 했다. 개울 막이란 개울의 중간을 뻘 흙으로 둑처럼 막아 물흐름을 멈추게 한 뒤 막힌 쪽의 물을 퍼낸 뒤 물이 줄어든 개울 아래를 손으로 더듬어 박하지를 잡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꽃게잡이도 했다. 꽃게는 썰물 때 얕은 물이 고여 있는 개울물 위를 둥둥 떠다녔는데, 그때 날렵한 동작으로 꽃게의 등짝을 엎어 눌러 바구니에 담곤 했다.

보통 서너 시간 박하지나 꽃게를 잡으면 바구니가 제법 무거워지고, 땡볕이 쨍쨍 내리쬐는 뻘에서 힘들게 잡은 게 바구니를 끌고 나오곤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대섬이라는 곳에서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썰물 때면 육지가 되고 밀물 때면 통통배가 떠다니며 고기잡이가 한창이던 그곳 대섬의 아름답던 그때를 생각하면 한 폭의 그림처럼 정겹기만 하다. 또, 대섬 아래 강가에서 망둥이 낚시를 하던 모습이 지금도 가슴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대섬은 충남 태안군 남면 양잠리 산 85번지 임야로 면적은 약 20헥타르이다. 옛날 이 섬에는 대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대섬이다. 하지만 지금은 천수만 B지구 방조제 공사로 매립된 뒤 섬 전체를 깎아 거대한 농지로 만들었다가 지금은 한국타이어 주행시험장으로 변해 버렸다.

아쉽게도 지금은 섬으로서의 흔적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내 어린 시절 대섬 주위 바다에서 박하지와 꽃게를 잡았다. 구렁뱅이 개울 돌 틈의 박하지며 망둥이 따위를 잡다가 붕치한테 쏘여 고생도 숱하게 했다. 섬으로 올라가서 지천으로 널린 고사리며 산나물을 부지런히 뜯어다 밥상에 올리곤 했다.

대섬에는 특히 구렁이와 지네가 많았는데, 나는 친구들과 지네를 잡아다 한약방을 하던 재종형님에게 팔아 용돈을 쓰기도 했다.

꿩과 산 비둘기도 많았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산새 알, 물새 알이 바위틈 덤불 사이에 부지기수로 널려 있었다. 여름이면 유독 나리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갖가지 야생화가 섬 전체를 뒤덮다시피 만발했다.

기묘한 모양의 돌과 바위들은 또 말해 무엇하리. 용이 승천했다는 용 굴도 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그 섬의 명소였다.

바다에서 소라, 게를 잡다가 비가 내리기라도 하면 재빨리 용굴로 몸을 숨겨 비를 피하기도했다. 잡아들인 게 바구니가 무거워 힘에 부칠 때는 대섬에 올라 잠시 쉬기도 했었는데, 그때 안면도가 훤히 내다보이던 대섬은 한 폭의 그림처럼 정겨웠다.

바다에서 돌아온 날 저녁이면 언제나 어머니가 맛있게 끓여 주시는 박하지 찌개가 밥상 위에 올라왔는데, 그 박하지 맛을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1995년 8월 홍성군 서부면 궁리에서 태안군 남면 당암리까지 태안반도의 남쪽 바다를 막은 서산 A,B 지구방조제 7,686m가 준공된 이후, 적돌만은 사라지고 없다. 바다로 돌출된 서산시 부석면 창리를 기준으로 하여 서산시 부석면과 태안군 남면의 지명을 한 글자씩 취해서 부남호(浮南湖) 혹은 서산 B지구 간척지라고 부르는 적돌만.

상전벽해(桑田碧海)라. 뽕나무 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된다고 했던가. 그 반대의 상황이 벌어졌지만, 내 어릴 적 바닷물이 드나들던 곳에 지금은 간척지 제방 위로 4차선 도로가 시원하게 뚫리고 수많은 차량 들이 씽씽 달리고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세상은 많이 변했어도, 박하지란 게만 생각하면 아득한 유년 시절로 돌아가 추억을 되살리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소중한 재산이다. 봄이면 설기 잡고 여름이면 박하지를 잡던 그리운 고향 바다 적돌만은 사라졌지만, 홀로 계신 어머니의 박하지 찌개 맛은 지금도 변함없이 맛볼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최병부㈔한국문인협회 서산지부장
최병부㈔한국문인협회 서산지부장

돌아오는 토요일에는 어머니가 끓여주시는 박하지 찌개를 맛보고, 또 오랜만에 구렁뱅이 개울이 있었던 옛 적돌만 바다 흔적이나 찾아봐야겠다.

비록 박하지는 잡을 수 없고, 꽃게도 잡을 수 없는 적돌만이지만, 내 어릴 적 추억이 아련히 남아있는 적돌만이 오늘따라 한없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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