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참으로 이상힌 일이다. 어릴 때 촌에서 살 때는 서울 한번 가보는 것이 큰 꿈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아니 어쩌면 서울은 고사하고 장날 아버지 따라서 제천읍에 한번 다녀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아버지 팔을 부여잡고 때를 쓰던 그 시절이 자못 향수를 가져오게 한다. 도시를 모르고 아침이면 집앞의 개울가에 가서 찬물로 얼굴과 손 씻는 것이 아예 규칙이 되어버린 그시절 , 어느날인가 하루는 수건을 가져오지 않아 할 수 없이 웃옷소매로 대충 닦아버렸던 그 추억들, 그런가하면 아버지가 장날에 돌아오시면 맛있는 과자나 옷을 사오셨나 하는 관심도 무척 컸지만 또 하나는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지 옆에서 얼굴에 두손을 마주 대고 여쭈어보는 그때가 사무치게 그리웁다. 아버지가 읍내에서 있었던 약장수 이야기와 서커스 이야기를 들려 주실때면 자신도 모르게 침을 흘리며 다음에는 '나 좀 꼭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던 그 모습, 졸라대는 나를 보자 아버지는 며칠후 마침내 제천읍 장날에 나를 데리고 가셨다.. 시장터에 많은 사람들, 장터 국밥집들, 옷가게, 신발가게, 가방가게, 책방 등 여러 가지 상품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무엇보다도 중, 고등학교가 있어 그 학교를 보는 순간에 나도 열심히 공부해서 의젓한 중,고 학생이 되고 싶은 꿈을 잉태하게 되는 큰 자극제가 되었다.

어디 그뿐이랴 해마다 여름날이면 주위 사람들은 생각지도 않고 학교에 돌아오는 길에 웃옷을 훌딱 벗어버리고 개울가에 풍덩들어가 물놀이하던 그 모습, 해가 저물면 그제서야 책보를 메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곤했다. 그런가하면 어르신네 분들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 멍석을 가지고 개울강변에 자리를 펴시고는 작은 솥을 걸고 감자를 삶아 서로 나누시며 하루의 삶을 정겹게 말씀들 하시곤 하셨다. 때로는 지나온 삶의 여정속에서 즐거웠던 일들을 회상하시며 너털웃음을, 어디 그뿐이리오 어려웠던 시절이 생각나셔서 눈가의 이슬이 맺히기도 하셨다. 그동안 우리애들은 물가에서 수풀에 있는 반딧불을 잡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때로는 자갈에 넘어져서 엉덩방아를 찧던 일들, 그런 우리들은 반딧불을 한 웅큼 잡아 하얀 비닐주머니에 넣어 놓고는 그 불빛이 너무 이상하여 보고 또 보고하였다. 혹자는 옛날 중국 동진에는 차윤과 손강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 데 두사람이 다같이 가난하여 기름을 살 수 없어 손강은 항상 눈 (雪)이 많이 쌓이면 그 눈빛에 책을 비추어 독서를 했고 차윤이는 여름이 되면 얇은 주머니에 반딧불을 수십마리 잡아넣어 그 불빛에 책을 비추어 독서를 하여 이부 상서에 올랐다고 한다. 그리하여 지금도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또는 매년 졸업식장에서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는 말이 곧장 회자되기도 한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달님이 환하게 우리를 내려다 보게되면 또 다른 내일을 기약하기 위해 함께 자리를 정리하고 같이 음식을 나누었던 음식도구를 챙겨 콧노래를 부르며 사랑의 보금자리로 발길을 옮기곤 했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늘 여름 이맘때가 되면 수십년전의 일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뇌리를 스치곤 한다. 지금처럼 편리한 세상은 아니였지만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조그만 음식이라도 이웃과 나누어 먹고 바쁘면 내일처럼 가서 도왔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자신을 돌보기에만 급급한 것 같다. 물로 급박하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다보니 그럴 수 밖에 없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주위에 어려운 사람에게 사랑의 작은 손길을 베풀 때을 보면 아직은 우리가 살만한 세상에 살고 있음을 피부적으로 느끼곤 한다.

그렇다. 우리민족은 정(情)이 살아있는 민족이다. 우리 모두 사랑과 관심으로 이웃과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간다면 우리의 사회는 분명 밝아지리라. 어둠을 밝히는 반딧불 세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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