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탁 탁 탁 탁

일정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 해장국집인데 무슨 소리일까? 밥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도마에서 잘려지는 식재료가 무엇일까 궁금하였다.

중국집 주방장인 지인은 딱따다다다닥 따닥~~ 그곳에선 일정한 리듬이 말달리는 소리같단다. 손과 팔에는 흉터 자국이 많다. 바쁘니까 서두르다가 칼에 베이고 데인다.

도마는 칼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처지를 바꿔 생각해보면 칼도 도마 없이는 존재의 의미가 없다. 칼과 도마는 세트다. 칼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도마가 필요하다. 좋은 칼이 요리에 재미를 느끼게 해 준다면 잘 맞는 도마는 요리에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도마를 선물 받았다. 공방에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세련되고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 더 튼튼해 보였다. 나무의 질감에서 따듯한 마음이 보태져 왔다. 캄포 나무라고 한다. 칼질할 때마다 나무에서 풍기는 향기가 있어서 기분이 좋다. 물결 무늬의 나뭇결과 밝은 색감을 가지고 있다. 크지도 작지도 않게 적당한 도마는 안정적으로 바닥에 붙어있어 흔들리지 않고 큰 소리 없이 받아내었다.

도마를 선물한 그는 운동을 좋아했다. 휴일이면 낚시, 등산, 마라톤, 자전거 등 운동이 일상이다. 그러다 팔이 아팠다고 한다. 병원에 가면 오십 견이라고 치료하면 좀 나아지고 또 아파서 다른 병원가면 좀 괜찮아지곤 했다. 1년이 지난 어느 날 팔에 종양이 올라왔다. 그제서야 큰 병원 가니 골육종. 희귀 암이라서 치료 방법이 많지 않다. 항암치료를 했는데 오히려 더 안 좋아졌다. 그저 좋아지기를 바라는 수밖에.

그날부터 운동이 더 일상이 되었다. 치료 중에도 틈내서 산에서 살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덥거나 춥거나 한결같이 운동하러 집을 나선다는 것은 웬만한 결심 아니고서는 힘든 일이다.

그러기를 5년. 전화가 왔다. "언니 이제 1년 뒤에 오라네."

그 뒤 "언니 완치되었다네." 담담한 어투로 전화했지만, 그간의 고생이 얼마나 컸을까 생각하니 내 목소리가 높아졌다.

누구에게 말도 안 하고 칼과 도마처럼 짝이 되어 서울에 있는 병원을 오르내렸다. 앞을 바라보지 않고 그저 그날 진료에서 나빠지지 않았다는 말만 듣는 것만으로도 만족했었다고.

한쪽 어깨에서 팔목까지 잘라내고 인공 뼈를 삽입하였다. 그 후로 한쪽 팔로 운전하고 마라톤도 하고 기타도 배우고 도마도 만들며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산다.

그 부부를 보면 잘 만들어진 도마 같다. 나무의 향기가 다가오고 나이테와 결이 보이기 시작하며 그대로 마음이 평온해진다. 칼이 일방적으로 도마를 내려치는 게 아니라 "내가 상처를 줘서 미안해." 도마는 칼에게 상처를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칼을 품어주는 거야." 서로를 위하고 배려하는 동생네 부부의 마음 같다. 기쁨도 슬픔도 모서리를 곡선으로 부드럽게 처리한 도마처럼 조금씩 둥글게 한 점으로 닮아간다.

살면서 우리는 칼과 도마처럼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한다. 상처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받기 십상이다. 가까운 만큼 기대고 바라기 때문

이다.

똑같은 암 환자라도 남편은 말이나 행동을 칼처럼 겨누었다. 난 도마에 박힌 생채기처럼 서러워서 힘들어했다. 그런 내게 동생은 조곤조곤 얘기했었다. "웃는 일이 없어도 일부러 웃고, 그러면 웃어서 행복해진다고."

선물 받은 도마를 어루만져 본다. 도마는 많은 시간 칼질로 인해 어느 한 곳 성한데가 없다. 칼질의 방향 따라 이리저리 잔금이 나 있다. 도마의 목리 대신 자잘한 흠결들이 다른 무늬를 내고 있다. 수많은 빗금으로 지나온 시간을 말해주고 있다. 물로 닦아내고 말려도 세월의 흔적은 어쩔 수 없다. 칼로 자르고 다지고 때로는 내리치기도 했을 도마는 말없이 칼날을 받아 품었을 테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칼날을 갈고 벼리듯 나를 돌아본다. 할 일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욱욱 화를 갑자기 내곤 한다. 90% 잘하다가 욱하는 성질 10% 때문에 다 깎아 먹는다. 도마처럼 포용하며 살아야 하리.

식당 도마에서는 일정하고 잔잔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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