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뜬금없이 갑자기 무언가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어렸을 적 하얀 눈이 내리면 노란 참외가 먹고 싶었다. 빨간 딸기도 덩달아 생각났다. 그럼 후다닥 달려가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곳엔 농약사에서 준 참외 사진이 있는 부채가 있었다. 하얀 줄이 선명한 노란 참외를 한참 눈맞춤 했다. 그리고 눈을 감으면 꼭 참외를 먹는 기분이 들었다. 달콤함이 솔솔 느껴졌다.

얼마 전에는 갑자기 고구마가 먹고 싶었다. 나는 고구마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일 년에 한두 번 생각이 날 때가 있다. 그날도 하루 종일 고구마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다음 날 고구마를 샀다. 자주색 고구마를 본 것만으로도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그 중 몇 개를 쪄서 먹었다. 두 번 정도 먹었는데 그 이후 고구마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우연히 밖에 박스를 정리할 때였다. 작은 박스에 고구마가 한 개 있었다. 잘 생각해 보니 지난번 샀던 고구마 중 먹고 남은 거였다. 아주 작은 싹이 올라와 있었다. 살짝 손이라도 닿으면 꺾일 것 같았다.

어두운 종이 상자에서 살려고 애를 쓴 것 같다. 미안하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바로 적당한 그릇에 물을 담아 고구마를 담갔다.

그리고 햇살이 잘 드는 창가에 올려놓았다. 하루 이틀 지나자 작은 싹은 더 짙어지면서 쑥쑥 자라났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고구마가 물을 얼마나 먹었나, 확인부터 했다. 깜빡 잊고 물을 안 준 날 저녁에 보면 거의 물이 없을 정도다. 정말 물을 많이 먹었다.

그래서 일단 아침에 일어나면 고구마 물부터 확인을 했다. 나의 관심을 잘 아는지 하루가 다르게 쑥쑥 고구마 싹이 자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고구마 싹이 길게 길게 더 길게 자라기 때문이다. 공간이 작아 마냥 길게 자라는 것이 어울리지 않았다. 아래로 길게 늘어뜨릴까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그것 또한 여의치 않았다.

반짝! 생각나는 게 있었다.

평소 예쁜 병이 있으면 물에 싹싹 헹구어 놓은 게 있었다. 또 안 쓰는 딸기가 그려진 컵도 생각났다. 집에 있는 병을 가져와 물을 반쯤 채웠다.

그리고 고구마 순을 잘라 두세 개씩 병에 꽂았다. 늘 보던 꽃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화장실에도 갖다 놓고, 책상 위에도 올려놓았다.

며칠 후 또 문제가 생겼다.

자르지 않은 작은 고구마 싹이 쏙쏙 고개를 내밀더니 인정사정없이 쑥쑥 자라 길게 길게 손을 뻗었다. 담쟁이덩굴과 사촌인 듯 보였다. 가만히 놔 주면 길게 길게 방 안을 빙빙 휘감을 것만 같았다.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안 쓰는 병을 가져왔다. 목이 긴 병에 꽂으니 꼭 동양화에서 보는 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자라다가 어느 정도 길어지면 난처럼 늘어지는 고구마 순이 은근히 매력 있다. 이번에도 집안 곳곳에 고구마 순이 담긴 병을 갖다 놓았다.

얼마 후 또 문제가 생겼다.

자꾸 자꾸 손을 뻗는 고구마 순 때문이었다. 병에 꽂아 놓아두었다간 정신이 없어 보일 게 분명하다. 강아지 사료 주듯 물을 주는 것도 은근히 싫증이 나던 터였다. 이젠 어쩐담, 하고 생각하다 또 반짝 생각나는 게 있었다.

바로 바로 20년 전 두 평 주말농장 할 때였다. 기억하고 싶지는 않지만. 비가 오면 풀이 어찌나 잘 자라는지 나중에는 비가 오면 풀 뽑을 생각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때 옆 밭이 고구마를 심었다. 고구마를 심는 게 아니라 고구마 순을 쿡쿡 심는 거였다. 나중에 보니 주먹만 한 고구마가 줄줄줄 나와서 신기했다. 우리 밭에는 구멍 숭숭 뚫린 상추 몇 장이 전부였던 터라 얼마나 부럽던지.

비가 살짝 오는 오후 쑥쑥 자라 뿌리까지 내린 화병 속 고구마 순을 감나무가 있는 아주 작은 꽃밭으로 가지고 갔다. 그곳에다 고구마 순을 군데 군데 심었다. 땅도 작고 딱딱한 편이라 고구마가 달릴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땅을 다시 조금 파주고 남아 있던 포대의 거름흙을 뿌려주었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김경구 아동문학가

다음 날 보니 고구마 순이 잘 살아있었다. 동네 아이들이 와서 진짜 고구마가 달리느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이 고구마 순이 길게 길게 뻗어가 땅속에서 주렁주렁 고구마가 달릴 거라고 말했다. 정말 숨은그림찾기처럼 고구마가 꽃밭 여기 저기 꼭꼭 숨어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며칠 후 또 문제가 생길 것만 같다. 그릇에 고구마 순이 여전히 쑥쑥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고구마 한 개가 골치 아픈 녀석으로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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