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은희 ㈜대원 경영지원본부장·수필가

순간 악을 쓰는 소리에 놀란다. 엄마는 아이의 고성에 어쩔 줄을 모른다. 두 살 남짓한 유아가 식탁에 차려지는 밥을 보자 온몸으로 목청을 높인 것이다. 엄마는 자기 입술에 집게손가락을 대고 소리를 내지 말라는 눈짓 시늉을 하나 아이가 알아들을 리 만무하다. 아이는 한 달 전만 해도 입안에 소리를 물고 웅얼거리기만 하여 걱정하였던 터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목소리가 트였는지 밥을 달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아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까 봐 신경 쓰는 부모의 마음은 아랑곳없다.

소리에도 결이 있다. 사람마다 목에서 나오는 소릿결은 다르리라. 어른도 아이도 그들만의 소리가 있다. 말을 못 하는 아이의 고성은 생리적인 욕구, 본능의 소리나 다름없으리라. 언어를 모르니 소리와 몸짓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목청을 높인다고 당황할 일도 아니고, 걱정할 일도 없다. 말귀를 알아듣고 언어를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듬어질 몸짓이다. 아이의 고성에서 나의 목소리를 돌아보게 된다. 어른이 된 지금도 노래 부를 때 아이처럼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지난 유월 청주산업단지에 특별한 합창단이 탄생하였다. 나도 지인의 특명으로 노래에 깊은 생각 없이 발라드 합창단원이 되었다. 매주 노래를 배우며 소리에 관한 사유가 깊어진다. 일주일에 두 시간 수업으로는 음치를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다. 덕분에 가사와 음률을 익히고자 노래를 자주 듣고 있다. 돌아보니 중학교 음악 시간 이후로 노래 연습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노래방이 성행할 때는 직장 회식 후에 동료와 다닌 적도 있다. 그곳에서 목소리만 높이면 점수가 잘 나오니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구나 싶었다. 발성법을 배우며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알게 된다. 배우면 알게 되고, 무언가 보이고, 예전과 달라진다고 했던가.

지휘자는 노래에 소질 없는 사람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작은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몇 배의 큰소리도 낼 수 있단다. 입안에서 소리를 모두 쏟아 놓으면 안 된다. 소리를 명치 끝까지 뒤로 당기면 울림이 크다고, 머리에서 가슴까지 손짓하며 세포와 근육을 활짝 펴라고 하는데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노래하는 순간에는 지휘자의 황소 같은 두 눈동자가 내 입술만 바라보는 듯싶어 민망할 지경이다. 입 모양에서 틀린 발음이 드러나지는 않을까, 화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목소리가 튀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목소리에 자꾸만 힘이 들어가고 소리는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다. 자연스러운 발성을 요구하는데, 그 자연스러움이 무엇인지 모르니 정녕 소리를 지르는 아이와 무에 다르랴.

소리도 일필휘지는 애당초 불가능하다. 좋은 소리는 울림이 있어야 하고 자연의 소리처럼 편안하단다. 아름다운 소리는 생각부터 달라야 한다니 저절로 되는 게 한 가지도 없다. 오랫동안 묵힌 모난 소리를 새롭게 다듬는 일이 어디 쉬우랴. 자신만의 고운 목소리를 내려면, 글쓰기처럼 쉼 없이 갈고 닦는 길밖에 없다. 특별한 합창단이다 보니 공연 요청도 들어온다. 구월의 어느 날에 합창 공연을 한다니 단원들이 들뜬 모습이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한마음으로 노래를 부르고 돌아가는 밤길은 뿌듯하다. 그리고 머지않아 뭇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합창단을 상상하니 흐뭇하기까지 하다.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매주 수요일, 소릿결을 다듬는 공간에 와 있다. 소리가 나려면 '신장의 물과 심장의 불, 폐의 조절능력'이 동시에 작용한단다.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머리에서 가슴까지 미세 근육과 감정 표현 등이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더불어 관객의 마음도 아우르니 소우주가 움직이는 거나 다름없다. 책이든 노래든 "입으로 소리 내어 읽으면 마음이 자유로워지고 의리가 저절로 나온단다." 내 가슴에 울림과 떨림이 일고, 곁에는 아름다운 화음을 함께할 단원이 있다. 소릿결 살리기에 무엇이 부족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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