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시선 수필가·옥산중 교장

이제 8월이다. 곧 가을이다. 하늘은 푸르고 곡식은 익어간다. 천둥 번개가 치고 땅이 흔들려도 세상은 그래도 돌아간다. 자연은 말이 없다. 다만 변화를 거듭할 뿐. 그래서 무위자연이다.

지난 칠월 중순에 있었던 오송 지하차도 참사! 이를 어찌 잊겠는가. 사람이 귀한 몸을 받아 이 세상에 오기도 힘든데, 그렇게 아깝게 허망하게 갔으니 이보다 더 애통하고 가슴 찢어지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나는 그날 방송에서 연일 들려오는 소식을 접하고 종일 우울했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여, 이튿날 현장에 가보았다. 바로 그곳이었다. 오송역에 가기 위해 자주 드나들었던 그 지하차도. 잘 몰라서 오송 만수교차로 쪽으로 갔으나, 참사가 난 곳은 그 반대쪽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다. 연신 물을 뿜어내고 있다. 마치 물대포 같다. 바로 옆에 사고 수습 현장이 있다. 높고 긴 고가차도에는 차량이 즐비하다. 가끔 사이렌이 울린다. 방금 시신을 수습했나 보다. 마음으로 기원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나타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짐이라 했는가. 망자도 망자지만, 이를 지켜보는 유족의 마음은 어떨까. 나는 한참을 바라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급박했던 현장 소식이 전해졌다. 747 빨간 버스! 이 버스는 급행버스로 청주국제공항과 오송역을 오가는 버스다. 나도 가끔 이 버스를 이용했다. 지하차도에 갑자기 물이 들어차자 버스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버스 뒤에도 차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물은 삽시간에 지하 천정까지 닿을 기세로 들이닥쳤다.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이때 정신을 놓지 않고 사람을 구하는 자가 있었다. 바로 747 버스 기사다. 그 외에도 몇 분이 더 있었다고 한다.

내가 버스 기사에 주목하는 이유는 세월호 참사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4.16 세월호 참사. 이를 말해서 무엇하랴. 국민적 공분이 하늘에 달했고, 아직도 진상을 다 밝혀내지 못했다. 그때의 세월호 선장. 그분은 자기만 살겠다고 배에서 빠져나온다. 방송 장면에서 똑바로 보았다. 선장이나 배에 있던 사람이나 목숨은 다 소중하다. 하지만, 747 버스 기사는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구하려고 애를 썼다. 여러 증언을 통해서 사실이 밝혀졌다. 그야말로 살신성인(殺身成仁)이다. 버스에 타고 있던 아홉 분 중에 네 분이 밖에서 인양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버스에 남은 다섯 분을 더 나오게 하려고, 또 버스로 들어갔다가 변을 당한 것 같다. 아, 자신의 본분을 다하신 분이여!

논어에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꼭 지켜야 할 세 가지가 있다. 바로 도(道), 위(危), 인(仁)이다. 첫째는 수사선도(守死善道)로 훌륭한 도는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지킨다(태백편 13장). 둘째는 견위수명(見危授命)으로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헌문편 13장). 셋째는 살신성인으로 자기를 희생하여 인을 이룬다(위령공편 8장). 747 버스 기사는 이 세 가지를 모두 행한 사람이다. 결국 자신을 던져 인을 이루었다. 이 어찌 숭고한 일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위기 앞에서 모면하려고 한다. 인지상정이다. 버스 기사는 자신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목숨까지 구하려고 했다.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란 어렵다. 이런 사람을 의인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의로운 사람이다. 의로움은 그냥 생기지 않는다. 그 바탕은 인(仁)이다. 공자는 인을 떠나서는 군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밥 한 끼 먹는 동안에도, 넘어지는 그 순간에도 인에 힘써야 한다고 말한다(이인편 5장). 아, 747 버스 기사는 이미 군자다. 물이 들이닥치는 그 순간에도 인을 저버리지 않았으니!

최시선 수필가·옥산중 교장
최시선 수필가·옥산중 교장

다시 미호강을 바라본다. 물은 무심하게 흘러간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고요하다. 물은 그저 물일 뿐이다. 언제 저 물이 재앙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그저 자연 앞에 겸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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