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얼마 전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꼭 살펴보는 것이 있다. 바로 호박덩굴이다.

주택에 살면 호박씨를 심고 싶었다. 작년 호박잎 전을 부쳐 먹은 뒤 더욱 간절해졌다.

20년 전 현재 살고 있는 주택으로 이사는 왔지만 마당은 작았다. 간신히 감나무를 심고 선물 받은 단풍나무를 심었다. 작은 마당 탓에 지금은 나뭇가지들이 모두 윗집과 골목으로 뻗어 있다. 멀리서 보면 우리 집 나무가 아닌 것 같다.

다행히 우리 집 입구 근처에는 작은 꽃밭이 두 곳 있다. 한 곳은 우리가 사용하고 또 한 곳은 옆집 경희네가 사용한다.

해가 갈수록 경희네는 아무것도 심지 않아 어느 해부터인가 아내와 난 꽃도 심고 앵두나무도 키운다. 올해는 수국과 목화 등 여러 가지를 심었다. 너무 많이 심어서 문제다. 게다가 심지는 않았지만 냉이꽃과 양달개비꽃도 키운다.

그렇게 마음먹었던 호박씨를 조금 늦게 심었다. 지인으로부터 받은 노란 호박을 자르고 나온 씨앗을 보고 급히 심은 것이다.

호미로 땅을 파고 호박씨 세 개를 넣고 다시 흙으로 덮었다. 호박씨 심은 곳 옆에 작은 돌을 놓아 표시를 해 두었다. 하지만 며칠이 가도 싹이 나오지 않았다. 물이 부족한 듯싶어 물도 잘 주었지만 여전히 싹은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모두 여섯 곳에 심었는데도 한 군데도 소식이 없었다. 혹시 호박씨가 썩었나 싶어 흙을 파서 볼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드디어 싹이 올라왔다. 난 소리를 지르며 휴대폰으로 싹을 찍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몇 군데에 심었지만 한 곳은 성공했으니까.

그런데 더 소리를 질렀다. 호박씨가 모두 싹이 나왔기 때문이다. 곧 연둣빛 호박이 달린다고 생각하니 벅차올랐다.

덩달아 신이 난 아내는 작은 빨간 물조리까지 사서 열심히 물을 주었다. 물을 먹고 고 작던 싹이 점점 키가 자라는 모습이 신기했다.

하지만 그날 밤 페북을 보고 걱정이 까만 구름처럼 몰려왔다. 어떤 선생님이 호박꽃이 피었다고 사진을 찍어 올렸기 때문이다. 별처럼 환하게 빛나는 노란 호박꽃을 보니 우리 싹이 빨리 자라는 게 아니었다.

어릴 적에 호박 덩굴 옆에 작게 구덩이를 파고 물을 주던 기억이 떠올랐다. 한낮 더위에 백구 혓바닥처럼 축 늘어진 호박잎이 물을 먹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기운을 냈다.

해가 지면 나는 물 당번이 되어 호박덩굴 옆 작은 구덩이에 물을 꽉 채워주었다. 물을 잘 먹은 탓인지 호박덩굴은 끝없이 뻗어나갔다. 그리고 노란 호박꽃을 여기저기 많이 피워댔다.

그러더니 구슬만한 호박이 달리고 점점 부풀어 올랐다. 입으로 바람을 불어 넣은 풍선처럼 며칠 후 큰 호박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호박을 뚝 따서 요리를 해 주었다. 특히 비 오는 날에 호박을 총총 썰어 듬뿍 넣은 부침개는 정말 맛있었다. 만들 때 나는 '지글지글' 소리에 침이 고였다. 집안에 가득 찬 고소한 냄새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지금도 가끔씩 비 오는 날이면 어릴 때 듣던 '지글지글' 소리가 생각난다. 그 소리가 비 오는 소리와 비슷해서 더 그런 것 같다.

며칠 비를 흠뻑 먹어선지 연둣빛 싹이 점점 자라 덩굴을 뻗기 시작했다. 아내와 난 서로 마주보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끈을 묶어 덩굴이 타고 올라가게 하고, 나뭇가지를 땅에 꽂아 덩굴이 감고 올라가게도 했다.

그런데 걱정이 생겼다. 비만 오다 멈추면 호박덩굴이 너무 빨리 뻗어가기 때문이다. 이젠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을 정도다.

가장 큰 걱정은 호박이 한 개도 안 달린다는 것이다. 호박꽃은 예쁘게 아주 예쁘게 피었는데 말이다. 그러다 딱 한 개 구슬만한 호박이 달렸다. 아침마다 그 호박이 잘 자라나 확인을 했다. 아주 작은 구슬 같았는데 며칠 만에 왕구슬 만하게 커졌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김경구 아동문학가

하지만 다음 날 호박이 사라졌다. 분명 달려있었는데…. 호박 덩굴 아래를 한참 살펴보다가 저 멀리 떨어진 호박을 보았다. 첫 번째 호박이었는데 아쉬움이 컸다.

호박덩굴도 상처가 컸는지 더 이상 호박을 매달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올 여름은 '지글지글' 소리를 들을 것만 같았는데…. 호박잎을 쪄서 쌈을 싸먹던지, 호박잎 전을 부치던지 해야겠다. 아내와 난 호박덩굴에게 또 한참 눈맞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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