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이진순 수필가

테크노단지 허허벌판에 중장비 기계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주말이라 공사판도 휴식을 즐긴다. 주상복합 아파트 공사 현장은 울퉁불퉁 어수선하다. 몇 개월 후면 근사한 건물이 설 자리이다. 물길을 내고 터를 다지고 윙윙거리던 어제와는 달리 고요하기만 하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부부는 뒤뚱거리며 걷는다. 삭막하다. 얼마 전만 해도 이 길에는 길동무들이 많았다. 내 발등에 오줌을 싸면서 도망가는 개구리, 풀밭에 숨어 울던 벌레들, 산골 소녀를 닮은 정구지, 밤새워 님을 기다리다 목이 길어진 달맞이꽃,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공사를 하기 위하여 길이 만들어지고 자갈을 깔아 놓았다.

걷는데 불편하지 않아서 좋다. 그러나 볼거리가 사라진 이 길이 낯설기만 하다. 부부는 말없이 걷는다. 이렇게 아침 운동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철길 옆에 혼자 사시는 어르신이 있다. 제천이 고향인 어르신은 종산을 지키기 위해 우리 마을에 오셨다. 테크노단지로 집이 들어가 버렸다. 어르신은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산에 컨테이너박스를 놓고 지내신다. 주변을 근사하게 울타리를 쳐 놓았다. 강아지를 4마리나 매 놓고 기른다. 그 옆을 지나면 고것들은 컹컹거리며 자기 사명을 다한다, 외딴 터에 계신 어르신을 보호하며 심심치 않게 해주는 말동무이다.

먹을 사람도 없으면서 밭에 온갖 채소를 심어 놓았다. 이웃들과 경로당 식구들에게 인심을 쓰신다, 임자 없는 공터에 호박을 심으셨다. 싱싱하다. 넝쿨이 뻗어나가며 조롱조롱 애호박이 열렸다. 환한 얼굴의 늙은 호박들은 길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웃음을 보낸다. 보기 만해도 싱그럽기만 하다.

철길을 너머 벌 독정이와 샛 독정이가 보인다. 막장가리 논배미에는 옹기종기 집을 지어 마을이 형성되고 있다. 오래전에 소망의 집이 들 가운데 지어졌다. 노인들의 쉼터다. 요양원에 봉사를 가보니 노인들이 많았다.

원평동 산골짜기가 변하고 있다. 멋드러진 레스토랑이 생기고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는 풍문을 들었다. 가구점 간판도 보인다. 울긋불긋한 집들이 마을로 이어졌다.

포도밭 과수원과 소를 키우는 우사가 있었던 곳이 도회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까치내 뜰에는 농민들이 일하다 쉴 수 있는 쉼터인 육각정도 있다. 농업기술센터의 농기구 빌려다 쓰는 시설이 생기고 창고도 있다. 절대 농지로 개발이 어려울 것이란 기대는 빗나가고 있다. 정보를 듣고 창고와 집들이 하나둘 지어지기 시작한다.

앞으로 저 멀리 보이는 까치내 뜰은 무한한 꿈이 펼쳐질 것이다. 문암 생태 공원에 아이들의 볼거리로 동물원이 생길 것이란 뉴스를 보았다. 서울랜드처럼 청주랜드가 생길 것이란 무성한 소문이 떠돌아다닌다. 앞으로 전개될 희망을 기대해 본다.

오랜 세월 조상님들이 주신 땅을 지킨 보람이 있다. 많은 고생을 감내하고 살아온 어르신들이다. 건강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지만 후손들이 잘살 것이란 희망으로 족하다. 얼마 안 남은 인생 어르신들이 행복했으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이진순 수필가
이진순 수필가

문암 생태 공원이 바로 코앞이다. 예쁘게 향나무를 심고 조상님을 모시는 멋진 납골당(納骨堂)이 있다. 묘지에 비석들이 웅장하다. 그 옆에 양봉원도 있다. 잡퓰이 무성했던 야산이 이처럼 아름답게 다듬어지는 이유는 땅값이 치솟고 있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나날이 변해가는 까치내 뜰을 바라보며 아침마다 산책을 즐긴다. 아직은 신선한 공기를 접할 수 있다. 산까치와 들짐승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두 손을 잡고 다시 일어나 걷는다. 저 멀리 기적을 울리며 기차가 달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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