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이은희 ㈜대원 경영지원본부장·수필가

입김을 불면 꽃밥이 금방이라도 하르르 흩날릴 듯하다. 꽃밥은 한껏 분을 품고 어찌 난쟁이 탑처럼 솟았을까. 마치 그 모습은 장독대 배불뚝이 옹기에 서설이 내린 듯 기운이 서린다. 꽃술은 늦가을 황금 들녘을 바라보는 듯 풍요롭기까지 하다. 자연은, 식물의 생태는 알면 알수록 신비롭다. 꽃송이의 수술은 갓 지은 쌀밥을 퍼 놓은 고봉밥처럼 윤기가 흐른다. 그 사람이 부모님께 첫인사를 오던 날이 떠오른다. 고봉밥을 게 눈 감추듯 퍼먹던 그의 모습을 어찌 잊으랴.

저녁 밥상에 나물 반찬과 된장국, 고봉밥이 오른다. 어머니는 주걱으로 밥공기에 갓 지은 쌀밥을 고봉으로 퍼 올린다. 능처럼 솟은 밥은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밥알이 후루루 떨어질 듯하다. 아마도 당신이 손수 지은 고봉밥은 한집안 식구로 맞이하는 의식 같은 것이리라. 그 사람도 어머니의 마음을 읽은 듯 공깃밥을 먹음직스럽게 비우는 게 아닌가.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에게 점수를 잘 받고 싶은 마음에 많은 양의 밥을 억지로 먹었는지도 모른다. 고봉밥을 다 먹고도 더 먹으라는 어머니 말씀에 싫은 내색도 없이 먹었으니 얼마나 고역이었으랴.

80년대 초 흰 쌀밥은 보기만 해도 군침 돌던 시절이었다. 그 사람이 우리 집에 인사를 온 시기는 내 나이 이십 대 중반. 내 밑으로 동생들이 두 살 터울씩 여섯 명이었다. 아홉 식구, 대가족이 밥을 먹으려면 한 달에 쌀 한 가마니로는 어림도 없었다. 동생들은 식성이 좋아 쌀독 눈금이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던 시기였다. 그래선가. 쌀밥보다는 늘 보리쌀을 먼저 삶아 쌀은 반만 넣고 계절에 나는 콩을 섞어 잡곡밥을 지어 먹었다.

늦가을 어느 날인가. 그 남자는 뜬금없이 자신의 키만 한 쌀 한 가마니를 등에 업고 나타난 것이다. 나에게 한마디의 말도 없이 불쑥 나타나 놀랐고, 식구들도 그의 모습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머니는 왜소한 남자가 쌀가마니 80킬로를 등에 업고 아파트 층계를 오른 것에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부모님에게 첫인사를 드리려고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할 때, 나는 어깨를 수그리고 몸을 곧추세우지 않도록 조심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키 차이를 줄일 순 없었든가 보다. 어머니는 키 작은 남자를 데려왔다고 못마땅하였던 터다.

그날, 키 작은 남자란 말을 쌀 한 가마니로 뒤엎은 날이었다. 그에게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말도 싱겁다. 직장을 다니며 조석으로 비료도 주고 농약도 뿌리며 벼농사를 손수 지어 등짐을 지고 온 농부의 아들. 쌀가마니를 집안에 내려놓고 소매로 땀을 훔치는 순박한 남자를 어찌 반기지 않으랴. 키 작은 남자는 우리 집에서 밥을 먹은 동안의 밥값을 제대로 치르고,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준 통쾌한 날이었다.

고봉밥도 이제는 옛말이다. 지금은 밥을 많이 먹는 시대가 아니다. 요즘은 건강상 탄수화물을 줄이고 샐러드를 즐겨 먹는다. 집에 놀러 온 사위에게 고봉밥을 퍼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딸 가진 부모의 마음은 비슷하리라. 부모가 되어 딸을 결혼시키며 사위가 내 자식처럼 살갑지는 않았던 듯싶다. 어머니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으리라. 시간이 흐르고 같은 입장이 되어야만 알게 되는 진리이다. 어머니는 사위가 될 사람에게 따스한 밥을 해주며 딸의 앞날을 걱정했으리라. 그리 생각하니 어머니의 손길이 더욱 그리운 날이다.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하늘정원에는 고봉밥이 풍년이다. 꽃마다 꽃밥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노을빛 황화 코스모스와 빛깔이 다양한 백일홍꽃, 보랏빛 벌개미취가 그렇다. 특히, 황화 코스모스의 수술은 고봉밥처럼 꽃밥이 드높다. 꽃을 바라보기만 해도 밥을 먹은 듯 든든하고 흐뭇하다. 한국인은 역시 밥심으로 산다. 한 끼라도 굶으면 비실거린다. 삼시 세끼, 밥심이 우리의 정신을 강하게 지켜 주리라. 오늘 저녁은 뚝심의 고봉밥을 식탁에 올리리라. 그에게 고봉밥 첫술의 느낌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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