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전원 전 청주교육장

냇물을 건너서 오일장을 보러 가던 할머니 장꾼들이 누군가가 길바닥에 떨어뜨린 전대(纏帶)를 집어 들고서 처리방안을 숙의하다가 때마침 그곳을 지나던 근동에 사는 자전거를 탄 중년 신사에게 처리방안을 물었다. 그는 자기가 파출소에 신고하겠다며 처음에 발견한 사람 이름과 주소와 생일 그리고 습득물과 발견한 장소를 확인하고서 자기 신분을 밝히고 가져갔다. 그 속엔 그들이 만져볼 수 없었던 만큼의 큰돈이 들어있었다.

일 년쯤 지나서 돈의 주인을 못 찾았다며 보상금 칠백삼십만 원을 찾아가라고 등기우편이 왔다. 할머니는 친구들과 같이 신고해준 신사분을 대동하고서 경찰서로 가 보상금을 받았다. 신사분에게 사례하겠다고 하니 한사코 사양하면서 마음만 받겠다며 그냥 돌아갔다. 보상금을 받은 할머니는 그 보상금 전액을 부락(部落) 발전에 보태 쓰라고 통장을 내놓았다.

그런 일이 있고서 사람들은 '역시 배운 사람이 낫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무엇을 배웠단 말인가? 신사는 전문학교를 나왔다니까 많이 배웠겠지만, 주민등록번호도 모르는 그 분은 누구한테서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배웠을까?

그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길인 도리(道理)를 깨달은 것뿐이다. 집안 어른들에게서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 몸에 익혀 실천했으며, 살면서 보고 들은 것을 자기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스스로 깨우쳐 올곧게 행함으로써 바람직한 심성을 마음에 자리 잡아온 거다.

그는 낫 놓고 기역 자는 몰라도 사람답게 처신하기에 누구도 무식하다고 함부로 대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배운 사람보다 낫다고 존경받고 있단다. 세상살이를 그렇게 몸소 배우며 살아왔다. 자랑할만한 게 없다며 난 척도 하지 않고, 매사를 상식으로 생각하면서 구십 평생을 보통 사람으로 평범하게 살아왔다.

상식(常識) 할머니보다 훨씬 더 많이 배우고 더 값진 경험을 철철 넘치게 했음에도 아주 몰(沒)상식하게 행동하는 이들이 자기 생리에 딱 맞는다고 골라서 배운 건 무엇이었을까?

부정과 부패, 갑질과 전관예우, 모르쇠와 책임 전가, 표절과 명함 가첨, 거짓말과 아첨, 표리부동과 후안무치, 매점매석과 매관매직, 무전유죄와 유전무죄, 공금횡령과 부정 축재, 직권남용과 가·피해자의 전도, 권력형 비리와 성추행, 존속 패륜과 학대, 토사구팽과 선사후공 등의 도리에 어긋나는 미친 짓거리는 대체 누구한테서 배운 걸까?

교육과정의 어디에도 없는 이런 걸 공교육에서 가르쳤을 리는 만무하고, 정신 올바로 박힌 교사나 학부모가 가르쳤을 리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우리나라를 범했던 오랑캐들이 그 흔적으로 뿌리고 간 걸 고맙다고 간직해온 건 더더욱 아닐 텐데, 빛나는 얼이라고 조상님들이 핏줄로 선명하게 전한 걸 되살린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선진국 진입을 위해 문명국의 정신적 자산을 국채까지 발행해서 수입한 건가? 설문의 오지(五肢)에 답이 없으니 문항의 오류가 아니면 천재들의 기발한 창작물이었나?

이젠 이런 일들은 선진 국민의 위상에 걸맞게 깨끗이 정리해야 할 것이다. 물론, 몸 바쳐 죽기를 한하고 잡은 권력이니 어찌 그 목숨 다하도록 누리고 싶지 않겠으며, 주린 배 움켜쥐고 모은 재산, 한번 멋지게 쓰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런 일들 스스로 정의롭게 고치지 않으면, 지금도 바보같이 조자룡 헌 칼 쓰듯 한다고 비난하는데, 상당한 세월 지난 후 당신의 그릇된 판단으로 나라가 엉망이 되었다는 치욕스러운 말을 당신의 직계 후손이 직접 듣게 하지는 말자. 후손들이 그런 소리 들으면 얼마나 부끄럽고, 비통해하겠는가!

김전원 전 청주교육장
김전원 전 청주교육장

한순간이라도 애타심이 생겨, 당신이 거머쥔 막강한 힘과 재물이 거저 온 게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피눈물 나는 희생의 대가임을 깨닫거든, 그들에게 진정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해보라. 그래서 그것들이 나라 발전에 보람되게 쓰이도록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뜨거운 애국심을 발휘해 주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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