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공연이나 연극을 관람하거나 스포츠 경기를 볼 때 티켓 값은 뒷좌석보다 앞좌석이 훨씬 비싸다. 무대와 경기장에서 가까운 앞좌석일수록 배우와 선수들의 숨소리와 표정까지 섬세하게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어 비싼 티켓 값을 기꺼이 감수하고 지불한다. 앞좌석이 언제나 관심을 받는 것은 아니다. 강의를 해보면 맨 앞좌석이 비어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강의실에 일찍 도착해도 앞좌석에 앉는 것을 기피한다. 강의실에 늦게 도착했을 경우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어쩔 수 없이 앉게 되는 수준으로 앞좌석의 값어치가 떨어진다. 나 역시 교육을 받거나 강의를 들을 경우 앞좌석보다는 뒷좌석을 선호하는 편이다. 앞좌석에 앉으면 강사의 질문이나 관심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부담스럽고, 뒷좌석에 앉으면 강의에 집중하지 않고 딴 짓을 할 수 있는 느슨함이 좋아서다. 무언가를 배우고 깨우치는 강의실에서조차도 유독 앞좌석이 홀대당하는 현상을 보면 아이러니하다.

차를 탈 때도 어떤 사람은 앞좌석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뒷좌석을 좋아한다. 나는 뒷좌석에 앉아 가면 멀리를 심하게 겪는 편이라서 요즘도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장거리를 갈 경우에는 가급적이면 앞좌석을 선호한다. 차 앞좌석을 떠올리면 언젠가 L에게 들었던 시아버지와 얽힌 사연이 생각난다. L은 집안에 행사가 있어 남편과 함께 시아버지를 모시고 자가용으로 서울을 다녀왔다고 했다. 출발할 때 남편이 운전을 하고 L은 앞좌석에 앉아 갔다고 한다. 일행은 천안 인근에 있는 휴게소에 들렀고, 출발하기 직전에 시아버지가 L에게 "내가 앞좌석에 앉아가도 되겠느냐"고 물었단다. 이에 평소 시댁과 불편한 관계로 지내고 있던 L은 시아버지의 요구를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나와 아내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갈 때면 매번 장인어른이 앞좌석에 앉아가도록 배려해주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L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의 처신이 이해가 되지 않아 당혹감이 느껴졌다. 부부가 함께 자가용으로 이동할 때 부부가 앞좌석에 앉아 가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지만 L의 시아버지가 멀미 증상이 있다거나 속이 안 좋아서 앞좌석에 앉아가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 시아버지가 L에게 모처럼 요구했을 수도 있는데 며느리에게 거절당했을 때 모멸감과 치욕스러움을 느꼈을 시아버지가 연상되어 안쓰러웠다. L은 시아버지로부터 받았던 불편한 감정을 집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며 해소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지인인 K는 자매들과 쇼핑을 하러 가거나 여행을 갈 때 자동차 앞좌석 문제로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에 심기가 예민해지고 불편해진다고 했다. 네 자매 중 막내가 멀미를 핑계 삼아 매번 앞좌석만 고집하며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고 했다. 차만 타면 멀미를 심하게 겪는 K는 자신의 입장을 전혀 헤아리지 않는 막내의 태도가 얄밉기까지 한다고 했다. 막내임에도 매사 언니들을 이겨먹으려 하고 대접만 받으려는 우월감에 빠져 상전 노릇하는 태도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심지어 자매들과 카페를 가서도 커피를 주문한다거나 차를 마신 후 커피 잔을 반납하는 일조차 알아서 하는 법이 없다며 속상해했다.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자동차에 좌석이 있듯이 삶과 관계에도 자리가 있다. 자리가 편안한 휴식을 제공하는 안식처이기도 하지만 서로 차지하려는 욕망과 경쟁의 범주일 수도 있다. 자리에는 자신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지만 역할과 책임이 수반되고, 상대방의 입장과 마음을 헤아리고 존중하는 예의도 존재한다. 오프라 윈프리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말을 들어주는 사람, 곁에서 온전히 함께해 주는 사람, 자신의 존재를 봐 주고 들어 준다고 느끼게 하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살면서 자기 뜻대로만 하려는 악성적인 이기심과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려는 심리가 습관화되어 고착화되면 관계가 불편해지고 뒤틀리게 된다. 어떤 일을 할 때 의도를 숨기지 않고 솔직한 감정을 주고받으며 상호 존중하는 성숙한 마음이 건강한 관계로 살게 해준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