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조혜경 풀꿈환경재단 이사

차가 고장 났다. 하필이면 여름휴가를 가는 길목에서. 고치는데 걸리는 시간은 무려 보름. 

부품수급이 어려워서 8월말까지는 기다려보아야 한다는 정비소의 말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지금 당장보다는 앞으로의 15일이 걱정되어서

시골은 차가 많이 없다. 버스가 하루에 10대 미만으로 다니고 그 마저도 시간이 아침, 저녁으로 집중되어 낮 시간대 이동은 거의 이루어지질 않는다. 그리고 다른 차와의 환승을 고려하여 면소재지 또는 차고지 중심으로 노선도가 정해져있기 때문에 원하는 목적지를 가기 위해서는 몇 번의 환승과 몇 시간의 인내가 필요하다. 특히 제주도 중산간지역과 유사한 형태의 끼인 오지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해서 몇날며칠을 버스노선도와 싸워야 했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서 버스는 총 5개 노선이 있다. 1개는 봉명종점까지 오가는 버스로 오전 6시가 첫차이자 막차이다. 또 다른 하나는 마찬가지로 봉명종점을 오가는 버스로 오전 7시에 출발하는 첫차이자 막차가 있고 그 외 오후 1시, 8시에 출발하는 버스도 있다. 가장 많이 오가는 버스는 오동 육교까지 오가는 버스로 오전 6시와 10시, 오후 1시, 5시, 8시까지 총 5차례 운행된다. 면 소재지를 지나는 마을버스, 공영버스도 있으나 단방향으로 운영되다보니 탑승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그마저도 겹치기 또는 건너뛰기 운행으로 낮 시간대 이용은 거의 불가능하다. 해서 시골에서의 버스는 기다림을 미학으로 한다. 

버스를 몇 번 이용해보니 그간 알 수 없었던 시골사람들의 성향도 쉽게 이해된다. 불과 며칠간의 경험으로 그렇게 쉽게 이해가 되겠냐마는 오고 가는 기다림 속에서 쉽게 건네지는 인사말, 친밀감 속에 넘쳐나는 그간의 사정들, 그리고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시골 살림살이 등이 정겹게 흘러넘친다, 버스 안에서는. 이것이 혹자가 얘기하는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다 안다!'는 그 시골 살이 이리라. 

그러나 여전히 시골에 사는 사람과 시골 사람은 다르다. 시골에 사는 도시 사람 또는 도시의 생활양식을 가진 사람, 또는 차를 가진 사람들은 시간의 사용주체가 '내'가 될 수 있다. 시간의 사용시간, 사용방법, 사용량 등이'차'를 매개로 하여 쉽게 정리되고 정돈되어 '나'를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골사람들 또는 시골에 사는 차가 없는 사람들 또는 시골에 사는 어르신들은 '내'가 주체가 되어 시간을 운용할 수 없다. 내가 볼일을 보기 위해 도시로 나가야할 때 나의 움직임은 '버스'로 대표되는 대중교통에 의존해야 하고 다시 집으로 들어올 때도 '버스시간'에 나의 볼일과 기다림의 시간을 맞추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의 주체가 '내'가 될 수 없다. 새롭게 얻은 지식이다. 

그런데 버스를 이용하면서 든 새로운 생각은 또 다른 감각을 얘기한다. '편하다'

내가 운전하지 않고 누군가의 운전에 나를 '온전히'맡기는 것이 책임감에서 해방되고 '빠름'에서 해방되는 새로운 방법이구나. 그리고 그 안에서 버스정류장과 버스정류장, 버스정류장과 도시의 공간, 그리고 새로운 볼거리들을 눈여겨보며 그간 보지 못했던 많은 '동네스러운' 것들을 알게 되고 마을 정보를 습득하고 더 많은 얘깃거리를 수집하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리셋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새롭다'

그리고 새로운 불편함을 알게 된다. '왜' 시골에는 보행도로가 없을까? '왜'시골에는 운동시설이 없을까? '왜'시골에는 버스정보기가 없을까? 등등...도시사람에 비해 시골사람은 더 많이 걷고 더 많이 움직여야 하며 더 많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데 이들의 편의를 보장하는 시스템은 여전히 낙후되어있다. 버스가 자주 없는 우리 동네에서 가장 빠른 이동편은 도보+버스이다. 그런데 도보는 산을 넘거나 차도로 걸어야하는 단점이 있다. 산을 넘는다는 것은 시간의 제약이 따르고 차도로 걷는다는 것은 상시 사고의 위험이 있다. 그런데 시골에는 보행도로도 없고 안전한 산길도 마련되어 있지 않으며 고단한 일상을 보내고 쉬고 재충전할 인프라도 없다. 억울한 일이다.

 시골사람은 단순히 시골에 산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골에 거주하는 시골생활양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여기에서 시골의 생활양식은 느리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마치 농업의 그것과 닮아있다. 그러나 시골사람들이 사는 그곳 '시골'은 농(림어업)업이라는 산업이 존재하고 취업자가 있으며 도시와의 양방향 소통을 통해 새로운 생활방식을 주고 받으며 성장하는 풍요로운 거주문화공간이다. 한 도시 내에서 단지'시골'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서비스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되는 일이 발생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더구나 여성, 노인 인구비율이 높은 농촌지역에서는 더더욱 

조혜경 풀꿈환경재단이사
조혜경 풀꿈환경재단이사

오늘도 차가 수리되지 않아 버스를 탄다. 버스정류장에 서서 환승방법을 알아보고 버스 정류장과 정류장 간 사이에서 어떤 버스를 타야 되는지 고민하며 정보를 얻고 미로같은 청주시내버스노선도를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내 옆에는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고민을 안고 버스 정류장 사이를 이동하고 있다. '많이 걷는다는 것' 그것이 버스가 주는 가장 큰 이로움이지 않을까 싶다. 오늘보다 내일, 더 많은 사람들이 걷고 버스를 이용했으면 좋겠다. 근거있는 바람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