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9월, 저녁바람에서는 가을이 더 느껴진다. 밤에는 살짝 열어 놓은 창문 사이로 풀벌레 소리와 바람이 들어와 행복하다. 짙은 가을도 좋지만 요즘 같은 초가을도 좋다.

게다가 요즘은 많은 전시회로 설렘 가득이다.

내가 살고 있는 충주시 지현동은 과거와 현재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곳이다. 여러 골목마다 벽화가 그려진 '사과나무 이야기길'로도 유명하다.

충주하면, 바로 사과가 떠오르는데, 이 사과를 지현동에서 처음 심었다고 한다. 오르락내리락 언덕길이 많은 우리 동네는 예전에 이런 길옆이 사과과수원이 아니었을까 싶다.

며칠 전 이런 우리 동네를 찍은 사진 전시회와 또 사과만을 주제로 한 그림전시회가 열렸다.

우선 권연정 작가의 'Apple story' 개인전은 전시회 공간부터 신선했다. 우리 동네에 있는 '지현동 4242' 갤러리에서 사과향이 폴폴 나는 듯 했다. 이 갤러리는 주택을 개조해 만든 공간이다.

마당에 큰 감나무와 들꽃을 그대로 살린 지현동 4242 갤러리는 계절과도 잘 어울렸다. 마침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동동동, 꼭 징검다리 같은 좋은 날씨였다.

주택을 자연스럽게 개조해 만든 갤러리라 그런지 전시된 그림 자체가 그 공간에 있는 것처럼 친숙하게 다가왔다. 잡지에서 보는 한 장면의 사진 같았다. 원래 하얀 벽에 빨간 사과그림이 걸려 있던 것 같았다.

눈길 닿는 곳마다 빨간 사과와 초록 사과가 다양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오픈식 때 굵은 사과 한 알도 주었다고 한다. 집으로 가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손에도 달콤한 하루를 선물했을 것 같다.

캔버스 가득 꽉 찬 빨간 사과 사이로 파랗고 노란, 그리고 분홍과 보라색 사과는 꼭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피부색이 다른 이들을 꼭 품어주는 것 같았다.

눈을 살짝 감고 보면 또 새롭게 다가온다. 빨간 사과 위로 둥둥 뜬 색이 다른 사과가 맛있는 색다른 구름 같아 꿀꺽! 침이 넘어갔다.

그리고 가짜 초록 사과를 가득 붙인 작품이 있었다. 그리고 딱 하나 빨간 사과가 있었다. 빨간 사과처럼 돋보이는 건 왠지 좋은 것도 있겠지만 섬처럼 조금은 외롭겠구나, 생각이 스쳤다. 풍요로운 시대에 빈곤 같기도 하고. 사과로만 가득 찬 전시회에서 새콤달콤 사과향에 취해 행복했다. 그리고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것은 바로 사과를 먹는 것이었다.

흐르는 물에 뽀득뽀득 사과를 씻어 껍질째 먹는 충주사과는 한 마디로 기똥차다. 사과를 먹으면서 전시회 사과를 또 떠올리니 미소가 번졌다.

이어서 바로 펼쳐진 것은 이은선 작가의 사진 전시회다. '지현동'을 지키는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이었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마치 과거로 추억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 또는 예전 흑백텔레비전으로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이은선 작가는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약 3년 동안 지현동을 오가며 카메라에 풍경을 담았다고 한다. 사진에는 지현동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담뿍 들어있었다.

지현동에 사는 사람들이 전시회장에 왔다면 아주 좋아했을 것 같다. 골목길과 주민들의 소소한 풍경 사진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어르신도 사진 속에서 만나 반가웠다. 작은 텃밭에서 파를 뽑거나 강아지를 꼭 안은 모습도 정겨웠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건너편 집과 골목 사진이 있어 신기했다. 나 역시 그 골목이 작고 예뻐서 좋아했다. 가을이면 주먹만 한 감을 만날 수 있는 골목이다. 더 오래 전에는 자두나무가 있었다. 자두가 익으면 가지가 척척 늘어져 그늘 골목을 만들어 주곤 했다.

우리 옆집에 사는 경희네 고양이도 사진에서 보니 더 귀여웠다. 이렇게 내가 잘 알고 있는 곳을 담은 전시회에 오니 꼭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미 그 사이 없어진 집들과 새로 생긴 것들을 만날 수 있었다. 또 몇 년 후 우리 동네는 어떻게 변했을까? 작가의 두 번째 전시회도 지현동을 담았으면 좋겠다. 사진에서 잊고 있던 사람과 그리운 풍경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김경구 아동문학가
김경구 아동문학가

가을이 점점 짙어갈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현동의 가을을 그려본다. 올 가을은 이미 충분히 좋은 선물을 받았다. 그림전시회의 사과와 사진전시회의 지현동 모습이다.

그 어떤 선물보다 귀하다. 내 마음속 상자에 오래오래 보관하고 싶다.

아! 내가 살고 있는 지현동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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