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내가 상해에서 본 일이다. 늙은 거지 하나가 전장(錢壯)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일원짜리 은전한닢을 내놓으면서 '황송하지만 이 돈이 못쓰는 것이나 아닌지 좀 보아 주십시오'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전장 사람의 입을 쳐다본다. 전정주인은 거지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다가 돈을 두들겨 보고 '하아오'(좋소) 하고 내어준다. 그는 '하아오'말에 기쁜얼굴로 돈을 받아서 가슴깊이 접어넣고 절을 몇 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다 보며 얼마를 가더니 또 다른 전장을 찾아 들어갔다. 품속에 손을 넣고 한참을 꾸물거리다가 그 은전을 내어 놓으며 '이것이 정말 은으로 만든 돈이 오니까?' 하고 묻는다. 전장 주인은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거 어디서 훔쳤어?' '아닙니다, 아니예요''그러면 길바닥애서 주었단 말이야?' '누가 그렇게 큰 돈을 빠뜨립니까? 떨어지면 소리가 안나나요? 어서 주십시오' 거지는 손을 내밀었다. 전장 사람은 웃으면서 '하아오'하고 던져주었다. 그는 얼른집어서 가슴에 품고 황당히 달아난다. 뒤를 힐끔 힐끔 돌아다보며 얼마를 허덕이며 달아나더니 별안간 우뚝선다. 서서 그 은전이 빠지지나 않았나 만져보는 것이다. 거친 손가락이 누더기 위로 그 돈을 쥘 때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어떤 골목 으슥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더니 벽돌담 밑에 쭈그리고 앉아서 돈을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열중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간 줄도 모르는 모양이다.

이글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피천득님의 수필 <은전 한닢>의 일부분이다. 어쩌면 우리인간의 본능이라 할 수 있는 소유욕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강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 수 없다. 비록 거지지만 은전 한닢이 온전히 내것임을 만져보고 확인하고서야 안심하는 모습에서 물질에 대한 애착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인간의 마음을 끄는 마력이 아닌가 한다.

그런가하면 박지원님의 기행록 '열하일기' 가운데 <옥갑야화> 라는 부분에 들어있는 허생전의 일부를 보면, 변씨는 가만히 그뒤를 따라갔다. 허생이 남산밑으로 가서 조그만 초가로 들어가는 것이 멀리서 보인다. 한 늙은 할미가 우물터에서 빨래하는 것을 보고 변씨가 말을 건다. '저 조그만한 초가가 누구의 집이오'. '허생원 댁입지요, 가난한 형편에 글공부만 좋아하더니 하루아침에 집을 나가서 5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으시고 시방 부인이 혼자사는 데 집을 나간 날로 제사를 지냅지요' 변씨는 비로소 그의 성이 허씨라는 것을 알고 탄식하여 돌아갔다. 이튿날 변씨는 받은 돈을 모두 가지고 그 집을 찾아가서 돌려주려 했으나 허생은 받지않고 거절하였다. '당신은 가끔 나를 와서보고 양식이나 떨어지지 않고 옷이나 입도록 하여주오, 일생을 그러면 족하지요, 왜 재물 때문에 정신을 괴롭힐 것이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그렇다. 돈으로 책을 살 수는 있으나 지식은 살 수 없고 또한 돈으로 쾌락은 살 수 있으나 행복은 결코 살 수 없다. 하지만 분명 물질적인 가치는 크다. 우리네 삶을 부요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 정신적 가치 또한 매우 소중하다. 그러기에 오래전부터 회자되어 온 것처럼 물질이 지나치게 적어도 주위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물질이 지나치게 많아도 관리의 어려움을 느낀다고 말이다. 일찍이 심리학자 메슬로우(Maslow)은 인간욕구 5단계를 주장한 바 있다. 가을이 점점 익어만 간다. 성숙의 계절인 이때에 우리의 삶 또한 성숙해 져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성숙된 삶은 정신적 가치와 물질적 가치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때 가능한 것이다. 요즘은 산과 들녘이 하루가 다르게 곱게 익어만 간다. 우리네 삶도 하루가 다르게 예쁘게 익어가는 성숙된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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