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어느 조사에서 법적 혼인 여부를 묻는 문항을 보고 연구자는 어떤 의미로 질문했을까 고민했다. 그간의 연구에서 법적 혼인 여부는 가족관계나, 혼인 여부가 주는 통계적 의미의 중요성과 관련되었으나 지금 이 시대에 유의미한 질문일까에 대해 생각이 미쳐서다.

이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져도 그 결과값에 대한 신뢰는 어느 정도일까. 혼인했는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에서 결혼은 했으나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혼인신고는 했으나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결혼도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지만, 누군가와 동거 상태에서 단란한 가족으로 지내고 있다면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망설일 것 같았다. 혹여 혼인 여부는 법적 기준에 두고 답을 얻는대도 그것이 그 사람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 요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국가는 2004년 제정된 건강가정기본법을 통해 가족과 가정을 구분해서 정의하고 있다. 법 제3조(정의)에서는 "가족"이라 함은 혼인ㆍ혈연ㆍ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를 말하고 "가정"이라 함은 가족구성원이 생계 또는 주거를 함께 하는 생활공동체로서 구성원의 일상적인 부양ㆍ양육ㆍ보호ㆍ교육 등이 이루어지는 생활 단위를 말한다.

법에서도 가정은 '가족구성원'을 전제로 하므로 협의의 해석으로 가정도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진 관계로 제한된다. 그러니 가족의 관계를 설명할 때 법적 혼인 여부는 매우 중요할 수도 있겠다. 민법에서도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를 가족으로 구성하고 있어서 여전히 결혼제도를 중심으로 가족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급변하는 사회현상은 가족에 대한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혼과 재혼, 입양과 무자녀, 동성애, 공동체 등 다양한 집단의 형태를 가족이라는 하나의 집단에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가정'의 개념도 생활이나 기능에 주목해 가족의 감정, 의식, 가치, 규범, 심리적, 물리적 환경을 모두 포함해서 쓰게 된다. 그래서 과거에는 가정의 기능이 경제적, 성적 통제 및 자녀 출산의 기능이 강조되었지만, 현대사회는 정서적 친밀감을 유지하고 여가 및 휴식의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건강가정기본법의 "건강 가정"은 가족구성원의 욕구가 충족되고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가정을 말한다. 인간다운 삶이란 어느 선을 말할까. 우리가 아는 건강한 가족은 그저 구성원 간 배려와 헌신, 감사와 애정을 기반으로 긍정적 의사소통을 해나갈 수 있는 곳이다. 그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공유하며 정신적 안녕을 누리고, 스트레스와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러니 친밀하고 지속적인 상호작용으로 서로의 문제를 해결하고 행복할 수 있다면 누구와도 건강한 가족이 되는 것이다.

가족은 이렇게 사회환경에 따라 형태와 가치관이 변하고 개념이 계속 달라진다. 법적 관계를 넘어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생활공동체로서의 가족을 다양하게 바라봐야 한다. 특히, 가족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친밀감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그래서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함께 사는 사람들끼리 정감을 주고받는 친밀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진다면 가족으로 해석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법적 혼인 여부에 대한 질문 하나에 생각이 여기까지 정리된 것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전통적인 가족제도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가족이 수행했던 수많은 전통적 기능을 사회 제도가 수행하고 있는 지금에도, 결혼 밖에서 태어난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강하게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가족 각본'을 쓴 김지혜는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이름 '홍길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홍길동은 결혼 밖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어머니 춘섬이 아버지와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자'가 되어 설움을 받았다며 결혼을 비튼다. 사람은 일생 동안 다양한 여러 형태의 가족을 경험하게 된다. 건강한 가정, 건강한 사회는 결혼 밖의 출생과 혈연 혹은 결혼으로 묶이지 못한 이들을 가족으로 환영하고 포용하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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