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리도 고울까. 꽃을 찾으러 다닐 때는 보여주지 않다가 뒤늦게 꽃을 피워 눈길을 끈다. 봄부터 잎을 만들지만, 가을이 되어서야 꽃을 피운다. 곱디고운 꽃. 작아도 꽃이다. 꽃으로서 갖출 것은 다 갖추었다. 고만이, 고만잇대, 고마리라고도 한다. 꽃이 고만고만하여 '고만이'라고 부르다가 발음의 편리상 '고마리'가 되었다는 설과 질소와 인이 많이 들어 있어 물을 깨끗하게 하는 고마운 이에서 고마리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활짝 핀 꽃이 보고 싶어 다시 찾은 자연마당은 발길을 떼어 놓을 때마다 메뚜기가 부산스럽다. 파란 하늘 아래 억새가 바람에 나부낀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도랑 가득 핀 고마리꽃 무리 속으로 천천히 산책하는 사람들은 더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색이 바래지는 느티나무 아래 고마리를 찾아갔다. 그 사이 고마리는 부쩍 개체 수가 줄었다. 오리 떼가 옆에서 유유히 헤엄친다. 부리를 연신 물속에 넣었다 뺐다 하는 거로 봐서 먹이 활동을 하는 거 같다. 무엇을 먹고 있을까. 논 속에는 잠자리, 장구애비, 꼬마물방개, 옆새우, 미꾸라지, 우렁이, 송장헤엄 지게 등 수많은 수서생물이 살고 있어 새들이 날아와 먹이 활동을 한다고 한다.

묵 논은 오래 내버려 두어 거칠어진 논을 말한다. 무논은 물이 괴어 있는 논을 말하는데, 이곳 자연마당은 묵 논을 무논 상태로 둔 곳이다. 한창 가뭄이 심할 때 이곳 논은 물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급기야 바닥을 드러내자 새카맣게 보이던 올챙이가 걱정되었다. 무논 옆 개천에도 물이 말라서 물꼬 역할을 못 하니, 쩍쩍 갈라져 애를 태우던 논이 지금은 풀과 꽃이 자라고 오리와 새들도 드나든다.

그때는 보이지도 않고 걱정하지도 않았던 고마리가 꽃을 피웠다. 고마리는 마디풀과로 전국의 도랑이나 물가에서 무리 지어 흔하게 자란다.

시골 살 적에 둑 아래 개천에 풀이 무성하였다. 풀을 먹는 염소도 이 풀은 먹지를 않아 쓸모없는 풀인가 했다. 가을이 되자 어느새 빨갛고 하얗게 꽃을 피웠다. 가지 끝에 10~20개씩 뭉쳐 달려 핀다. 귀찮을 정도로 지천으로 널려있던 풀이 꽃이 되었다.

가까이 가서 보면 더 귀엽다. 초록색 잎새 위에 하얀색 쌀처럼 모여서 피고 끝에는 입술연지를 바른 듯 발갛다. 활짝 핀 꽃을 보고 싶었는데 몇 개만 몽우리를 벌리어 흰색 수술을 드러내 놓고 있다.

분홍, 하얀, 붉은빛으로 작고 귀엽게 피어나는 고마리꽃은 보기에는 작아도 수질정화 능력이 뛰어난 덩굴성 한해살이풀이다. 연약한 줄기를 가지고 있는 고마리는 살랑 부는 바람에 쓰러질 듯 위태롭다. 그러나 자기 몸짓의 서너 배나 되는 뿌리를 갖고 있다. 오염이 심한 곳일수록 뿌리가 더 잘 발달한다. 물속으로 뻗은 무성한 뿌리를 이용해서 생활하수나 온갖 더러운 물을 정화한다. 뿌리가 습지에 발달하여 물과 함께 오염 물질을 흡수하는 수질정화식물이라는 것을 알고 고마리 군락을 보니 마음조차 정화되는 듯하다. 손톱보다 작은 식물이 환경을 정화하고 때로는 우리 마음을 정화하기도 하니 기특하다.

개울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더러운 곳에서 자라서 귀찮은 풀로 여겨왔는데 물 흐르는 곳이면 뿌리를 내린다. 오염된 물을 정화해 주는 고마운 야생화처럼, 우리 사회에도 고마운 이웃들이 많아지길 기다려 본다.

관심 없이 그저 스쳐 가면 예쁜지 모르고 지나치는 꽃. 무논 가장자리에 핀 고만고만한 꽃들이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니, 세상을 밝히는 사람을 보는 것 같아 대견하다. 앙증맞은 고마리꽃이 세상을 정화하는 이 가을, 고마운 이들을 떠올려 본다. 고마리꽃만큼이나 많이 생각나서 다행이다. 무엇이든 느지막이 이루는 나는 누군가에게 든든하고 고마운 사람일까?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땅에 핀 별꽃들. 저 작은 고마리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가치가 있다. 알고 보면 아무 이유 없이 태어나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허투루 된 것이 없다. 무시해도 괜찮은 것은 단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사는 게 늘 고만고만한 거 같아 시시하다고 느낄 때면 고마리를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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