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영희 수필가

시앗을 보면 부처도 돌아앉는다는 속담이 있다. 남녀의 정이 나뉠 때 얼마나 속이 문드러지는지 한마디로 정의한 말 일게다.

918년 고려를 연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지방 호족들의 도움을 받아 국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혼인 정책을 썼다. 각 지역에 힘이 센 호족의 딸과 결혼하다 보니 신혜왕후 유 씨를 비롯하여 총 29명의 왕비를 두었으며 그들에게서 25남 9녀를 얻었다. 이로 인한 득도 컸지만 오랜 기간 외척에 시달렸다.

우스개로 한심한 남자는 평생을 본처하고만 사는 남자이고 양심 있는 남자는 본처에 애인이 하나. 세심한 남자는 본처에 애인이 둘. 사심 없는 남자는 본처에 애인이 셋. 열심히 사는 남자는 본처에 애인이 아홉 있는 남자라고 하여 능력(?) 있는 남자들은 자부심을 느낀다. 미투 운동이 일어나며 유머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는데 열 명도 아니고 목적 달성을 위해 그 세배를 수단으로 썼다니.

고구려의 옛땅을 회복하기 위한 북진정책은 바람직하지만, 가장 많은 여인을 능멸한 왕인 것 같아 자료 수집 차 보던 책을 덮었다. 손안에 들어온 책은 다 읽는데 잠시 갈등을 느끼며 꽃집에 들렀다. 처음 보는 야생화에 눈이 간다. 분하나를 덥석 사서 꼬박꼬박 물을 잘 주었으나 며칠 만에 고개를 떨어뜨린다. 화분을 해체하니 반은 스티로폼을 잘라서 넣고 위에만 흙으로 덮었다. 아직도 아름다운 겉모습에 현혹되는 자신이 한심했다. 정성과 시간을 드려 뿌리를 잘 내려야 줄기도 제대로 자라고 꽃도 오래간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깨달았다. 꽃도 저러할 진데 대대손손 사람살이의 뿌리야 오죽하겠는가.

마침 '인다호걸 청주의 명가' 초대를 받았다. 야생화에 충격을 받은 뒤라 관람 후 내 고정 관념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하류의 무심천 물도 상류부터 흘러와서 지금 이곳을 지나고 있지 않은가.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그 문장밖에 없는데, 일천일백 년이 지난 그 옛날의 정책에 호불호를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드워드 헬릿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 했고 평범한 역사도 비범한 누군가의 손으로 빚어낸 덩어리다.

청주에 터를 잡고 사는 55개 씨족 중 중 17개 문중이 대여 기탁, 기증해 준 자료와 고인쇄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성씨 관련 자료를 중심으로 기획했다고 한다. 인다호걸(人多豪傑)이란 표제도 왕건이 청주를 일러 '땅이 기름지고 인물이 많다'라고 청주의 풍속을 이른 데서 유래했단다. 찬찬히 톺아보며 어린 시절 쥐가 오줌을 싸고 찢어져 못 쓰게 된 경주이씨 교지가 떠올라 얼굴이 화끈했다. 의식주 해결하는데 바빠 소중한 문화유산을 간과한 한심함이 혈연을 이어주신 이제현 초상과 파평윤씨 윤관 초상 앞에서 더 부끄러웠다. 1490년대로 추정되는 나신걸 한글 편지가 전시된 안정 나 씨 문중 앞에서는 붙박이가 됐다.

"집에 가 어머님이랑 아기랑 다 반가이 보고 가고자 하다가 장수가 혼자 가시며 날 못 가게 하시니, 못 가서 못 다녀가네. 이런 민망하고 서러운 일이 어디에 있을꼬? 군관 자리에 자망한 후면 내 마음대로 못 하는 것일세. (중략) 분하고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내네. 집에 가 못 다녀가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에 있을꼬. 울고 가네. 어머니와 아기를 모시고 다 잘 계시소. 내년 가을에 나오고자 하네."

아내 신창맹씨 묘역에서 나온,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라고 한다. 그 시절에도 이런 사랑 편지에 화장품과 필수품을 사서 보낸 로맨틱한 지아비가 있었다니.

이영희 수필가
이영희 수필가

우리가 부모와 조상을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어도 억겁의 인연에 의해 가문과 역사는 면면히 이어져 왔으니, 문화유산을 잘 보존한 가문은 명문가가 틀림없다. 우리의 삶은 또 먼 훗날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불리는 2억 7천만 년 전의 은행나무처럼 오래오래 지속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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