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을 사르다] 이난영 수필가

'봉황의 날갯짓, 탐스러운 연꽃 봉오리, 용의 비상'을 보며, 기쁨으로 일렁였다. 백제인들이 꿈꿨던 이상 세계가 담긴 보물 중의 보물, 삼라만상이 집약된 백제의 정신이 깃든 동아시아 최고의 금속공예품 백제금동대향로 앞에서 가슴 벅차지 않은 사람 뉘 있을까.

공기 맑고 가을향기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날, 청주 문화인들이 백제문화 유적지를 찾았다. 국립부여박물관은 총 4개의 전시실과 야외 전시실이 있다. 제1전시실은 청동기시대부터 철기시대까지의 유물로 타 박물관과 비슷해 재바르게 지나쳤다. 제2전시실과 제3전시실의 사비 천도와 왕경문화, 능산리 사찰과 백제금동대향로,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불상을 보며, 그들의 탁월한 공예 기술에 감탄했다.

백제는 사비 천도 후 불교문화가 절정에 달한다. 지붕 위에 세우는 치미도 화려함과 위엄을 갖춘 예술품으로 승화시킬 정도로 예술 감각이 뛰어났다. 우수한 공예 제작 기술에 정성과 혼을 담았기에 백제의 미소가 탄생했으리라. 백제인의 빛나는 기상과 탁월한 기술은 이웃 나라 일본에 절과 탑을 세우는 데 일조한다. 1993년 조선일보사가 주관하는 일본 속의 한민족사 탐방을 다녀왔다. 나라의 동대사, 범륭사 등 백제 유물과 유적지에서 백제인의 숨결을 느끼며, 긍지와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백제금동대향로 앞에서 발길이 머문다. 백제의 멸망과 함께 진흙 속에 고이 잠들어 있던 타임캡슐이 1500년이 지난 1993년 12월, 모습을 드러냈다. 온 나라가 술렁거렸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30주년을 맞아 '백제금동대향로3.0-향을 사르다' 특별전시를 하고 있다. 고대의 향, 새롭게 밝혀낸 백제 향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백제금동대향로의 향을 소개한다. 3D 디지털 돋보기 키오스크가 마련되어 있어 육안으로 보기 힘든 도상들을 세세한 부분까지 감상할 수 있다. 신비롭다.

향로의 받침은 용이 향로 몸체를 입으로 물어 올린 모습이며, 몸체는 연꽃잎으로 장식되어 있고, 뚜껑은 산봉우리가 층층이 겹친 모양이다. 뚜껑 위에는 날개를 활짝 편 봉황이 앉아있다. 다섯 명의 악사와 현실 세계 동물, 상상의 동물, 신선이 표현되어 있다. 산 사이사이에 열두 개의 연기 구멍이 있는데 향을 피웠을 때, 연기가 밖으로 나오는 구멍은 일곱 개이고, 나머지 다섯 구멍은 공기가 안으로 들어가 향이 더 잘 타게 하는 역할을 한다니 아름다우면서도 과학적이다. 백제금동대향로가 건네는 치유의 향으로 바쁜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본다.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인들이 꿈꾸는 이상향이라는 설과 불효자의 사부곡이라는 설이 있다. 이 대향로가 발견된 사찰은 위덕왕이 아버지인 성왕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절터다. 백제 중흥을 이끈 성왕은 백성들이 존경하는 군주였다. 백제 부흥을 꿈꾸었던 성왕은 전쟁터에 나가 있는 아들인 창(위덕왕)을 위로하기 위해 길을 나섰으나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였던 관산성에서 신라군에 의해 참변을 당한다. 백제 위상을 널리 높였던 부왕(父王)이 자신 때문에 시신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으니, 그 고통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오죽하면 왕좌까지 버리고 승려가 되려 했을까. 부왕(父王)이 그립고 죄스러움에 절을 짓고, 공덕을 닦았으리라. 증명이라도 하듯 창왕이 만들고, 매형공주가 사리를 공양했다는 글이 새겨진 사리 보관 용기(창왕명석조사리감)가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다.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 중흥을 꿈꿔왔던 성왕의 꿈과 좌절, 아버지의 비참한 최후를 감당해야 했던 위덕왕의 애달픈 심정이 서려 있는 사부곡이라는 설이 맞지 않을까. 어쨌든 금동백제대향로는 민중의 삶에서 왕실의 염원까지 모두 담아낸 백제 역사의 대서사시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

이난영 수필가
이난영 수필가

뛰어난 공예 기술에 탁월한 예술 감각으로 종교와 사상까지 담은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 문화예술의 완숙미를 보여준다. 백제인의 세계관을 대향로에 담아서 후세에 보내준 보물에 매료당한 하루가 보람 있다."역사는 유적과 유물을 만들고, 유적과 유물은 역사를 증언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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