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인생 버킷리스트 꿈을 쓰는 시간은 행복하고 달콤하다. 퇴직한 남편과 둘이 함께, 이모작 인생 계획표를 썼다. 인생의 십일조를 제 3세계에 한국어 가르치는 일을 통한 시니어선교, 제주 한 달 살기. 다리가 떨리기 전, 할 수 있는 대로 많은 나라 여행하기……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는 말대로 전국일주하며 지역특산품도 사고, 소문난 맛 집도 다니면서 그 지역 사람처럼 살아 보기로 했다. 남편은 한 술 더 떠, 우리나라 어디든 가 보고 싶은 도시에서 한 달 씩 살아 보자 한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새로운 도전은 모험이다. 인생은 끊임없이 도전과 모험의 연속이 아닌가. 매 달 1일이면 어김없이 안부 인사를 보내오는 남자가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바쁘게 살아가는 삶속에, 서로의 안녕을 주고받는 따듯한 인사로 마음을 나눈다. 인사 끝에는 방콕에서, 비엠티엔에서, 핫야이에서 천. 이렇게 마무리 된다. 말리의 남편인 그가 있는 곳에 언젠가 꼭 한 번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차일피일 미루다 겨울에, 여름을 살아 보기로 했다. 한 달 살기 짐을 쌌다. 어쩌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짐은 가방 한 개의 분량만큼 일지도 모른다.

방콕에서 900여 키로 떨어진 태국 남부 핫야이시 주택가에 숙소를 두었다. 두 집 생활비를 똑 같이 통장에 넣고, 공동으로 사용후 모자라면 더 채우기로 했다. 오랜 만에 만난 친구는 이역만리 향수병에, 지나 온 삶의 이야기들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풀어낸다, 기분 좋은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내 말리의 눈길은 따듯했다. 긴 속눈썹에 맑고 순한 눈동자를 가진 태국여인이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여인보다 더 유교적인 가치관을 가졌다. 짧은 한국어로 대화가 통했고, 영문학을 전공한 5개 국어를 사용하는 지혜롭고 순종적인 젊은 친구다.

낯선 곳에서 현지인처럼 산다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과일과 생선, 고기와 생필품 가격이 워낙 저렴하다 보니 시장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1키로에 1,300원 하는 망고를 원 없이 실컷 먹고, 부담 없는 가격으로 타이 전통 마사지를 마음껏 누리는 호사스러움을 즐겼다. 남편은 다른 나라에서 아내가 만들어 주는 음식을 먹으며 엄지를 치켜든다. 친구분은 먹고 싶던 청국장과 탕국, 무생채, 겉절이 등을 끼마다 드실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우리가 떠난 후에도 오래 두고 드실 수 있는 밑반찬도 만들어 냉장고를 가득 채웠다. 말리에게 우리음식 만드는 방법도 알려주고, 한국어 공부하는 시간도 가졌으니 일석이조 그 이상 이었다.

송콜라 바닷가에 돗자리 깔고 앉아 하늘과 바다를 한 가득 담는다. 새끼를 가슴에 매달은 어미원숭이가, 나무 위에서 슬쩍 내려 와 먹거리를 가지고 달아나던 귀여운 모습이 익살스럽다. 차이나타운 쇼핑. 섬투어. 곳곳의 전통 절과 이슬람 사원을 돌아보았다. 잔잔한 바람을 마주하며 운동도 하고,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꽃 공원, 새 공원, 얼음조각 전망대가 있는 사원에 갔다. 금으로 장식한 35미터 와불상과 돈나무 부처상이 있는 곳이다. 갑자기 말리가 사라졌다. 한참 후 만났는데, 남편의 건강과 하는 일이 잘되고, 둘이 행복하게 잘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왔다는 것이다. 종교가 달라도 세계 모든 여자들의 기도에는 비슷한 공통점이 있는 게 확실하다.

이경영 수필가
이경영 수필가

아침에 잘 잤냐? 인사하고, 저녁엔 굿나잇! 인사로 시작과 끝을 공유하며 말리와 함께 가족으로 한 달을 살았다. 작지만 내가 가진 것을 마음껏 즐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귀여운 여인 그녀와 태국 한 달 살기는 내 인생의 캔버스에 또 하나의 그리운 그림으로 남을 것이다. 한 달씩 살아 보기 여행 프로젝트는 앞으로도 쭈욱 진행형이 될 것만 같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