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육십년을 넘게 산 청주를 잘 모른다. 그러면서 일주일쯤 머문 뉴욕이 어떻다고 말하고 싶다. 익숙해지면 제대로 보기 어렵다. 물들지 않은 새내기의 눈이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논리를 강변하고 싶은 것이다. 약 400년의 역사, 구백 만에 가까운 인구, 세계의 수도라 불리는 뉴욕이다. 2001년에는 세계무역센터가 비행기의 공격을 받은 9?11테러를 겪었다. 유엔본부를 비롯해 많은 분야에서 세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대단한 도시다.

내 느낌으로 뉴욕은 누욕(陋辱)이다. '누추하고 욕된 도시'라는 의미로 내가 그렇게 느꼈다는 게다. 뉴욕은 시끄럽고 냄새나고 붐비고 복잡했다. 조용하고 깔끔하고 한산하다면 한적한 시골풍경이 떠오르지 않는가? 뉴욕의 모습이 도시의 특징이다. 하루 종일 병원의 응급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중에는 환청인지 실제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일부 지하철에 들어가자 후각이 먼저 지린내를 알려주었고 마리화나 합법화로 젖은 낙엽 혹은 고무 타는 냄새가 도시 곳곳에서 풍기고 있었다. 뉴욕에 인파가 넘쳐나는 건 누구나 안다.

뉴욕에서 이 시대 특징이 확대되어 보인다. 우리는 시장 자본주의에 살고 있다. 시장도 어쩌면 인터넷 공간과 방송 영화 게임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주식 증권 같은 시장이 훨씬 더 커다랄 것이다. 문화가 시대 흐름이라 한다면 곧 먹고 즐기고 보는 것 아닐까? 보고 싶은 것들은 타인의 성적 매력과 서로 이기려는 싸움이다.

시장은 이익을 원해 품질 좋은 것을 싸게 공급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홍보와 유통이 더 중요해졌다. 이제는 소비자들도 '저 사람이 가진 것을 나도' 혹은 '남에게 뒤질 순 없어'에서 한발 더 나아가 '내가 먼저' 경쟁을 하는 것 같다. 홍보가 제 철을 만나 자본주의의 최첨단에 광고가 있다.

타임스퀘어에 가보았다. '시간광장' 근사하지 않은가? 눈 닿는 곳에서 의도적으로 나를 향해 영상을 쏘아댄다. 건물이 온통 광고판이다. 눈에 띄려면 '보다 현란하게, 보다 자극적으로' 가야하리라. 그곳에서도 한국은 뒤지지 않고 "다이나믹 코리아"를 알리고 있다.

한국도 뉴욕과 시차 없이 혹은 조금 느리게 그 흐름에 합류할 게다. 뉴욕에는 다양한 이들이 모여 산다. 오늘날 구백 만에 가까운 시민들은 세계각처에서 건너온 이주민이다. 제 앞가림 바쁜 삶에서 남에게 신경 쓸 여유는 없었을 게다. 남 눈치 볼 필요 없다는 게 삶을 얼마나 편하고 자유롭게 만드는가? 남과 다르다는 것에 주눅 들지 않고 나아가 내가 남과 다름을 드러낼 때 개성이 한껏 발휘된다.

뉴욕에서는 누군가 조금 튀는 행동을 해도 지적을 하거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관심을 끌기 원하거나 처세가 과격한 이들은 '내가 이런 행동을 해도 반응이 없느냐'는 오기가 생길만도 하다. 몇 번 시도해 반응이 없으면 스스로 지쳐 그런 행동을 내려놓을 테지만, 얻는 것이 있으니 온전한 나만의 자유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도 남에게 간섭받지 않는 게다. 이런 문화에 낯선 내 눈에 뉴욕이 정상으로 보일 리 없다. '도시가 왜 이래, 완전히 제 멋 대로네' 허나 그 안에는 허술해 보이나 정교한 질서가 촘촘하게 작동하고 있을 게다. 그게 더 무섭다.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뉴욕의 또 다른 면은 화장실을 찾고 사용하는 게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한 해에 오천만 명을 헤아리는 관광객이 뉴욕을 찾는다는데 그 생리적 욕구를 어떻게 다 해결할까? 한번은 맥도날드에서 화장실을 찾았는데 입구에서 영수증을 확인하고 있었다. 영업장 사람들도 난처하기는 매 한가지일 게다. 그냥 두면 손님들보다 화장실 이용객이 더 많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그래서 결국 자본주의적 발상으로 해결했을 게다. 안쓰러운 일이다. 그래도 세계의 수도라는데…,

내 자존심을 지키는 소소한 방법은 뉴욕을 누욕(陋辱)이라고 강변하는 게다. 뉴욕, 조금은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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