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언젠가 영국의 어느 광고회사가 큰상을 내걸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어떻게 하면 스코트랜드의 에딘버러에서 런던까지 가장 빨리 갈 수 있느냐는 내용의 퀴즈를 낸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퀴즈가 신문방송을 통해 나가자 수많은 사람들이 즉각 응모했다. 이 퀴즈의 응모한 사람들은 실로 다양했다. 최상의 교통수단 방법이 등장했다. 그런데 이 수많은 음모자들 중에서 상을 탄 사람은 뜻밖에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 ' 이라고 써 보낸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계산이 아니라 심리적 계산을 한 사람이 정답으로 인정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아무리 먼 길이라도 가깝게 느껴지는 법이다. 인생길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아무리 고되고 험난한 인생길도 잘 극복해 나갈 것이다.

어느새 2023년 한해도 달랑 달력 한장만이 벽에 갈려있다. 돌아보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 비록 물질적으로 도움은 주지 못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친구 같은 삶의 멘토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그저 함께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힘내라고 어눌하지만 진심어린 격려의 한 마디는 어렵고 힘든 삶의 무게를 얼마나 가볍게 해주는 지 삶의 여정을 통해서 실감한 적이 있다. 그래서 자신의 속내를 숨김없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 사람이야말로 그 사람의 삶은 잘 살아온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시금 이렇게 묻고 싶다. 지금가고 있는 인생길이 멀고 험난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나에게 지워진 그 삶의 무게가 무겁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그 답이 '아니요' '힘들거나 무겁지 않아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니까요' 라고 말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자신의 삶의 무게를 함께 나누고 고단한 인생의 길을 함께 가며 기쁨과 슬픔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그는 행복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후배 딸의 결혼식에 다녀와서 불현 듯 안방 책장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아주 빛바랜 흑색의 결혼식 사진을 보며 오늘따라 많은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다. 정말 나는 아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나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가? 결혼식장에서 주례선생님이 물었을 때 그 내용을 잘 실천하고 살아 왔는가? 나는 진정 나와 함께 사는 배우자인 아내에게 먼 길을 가깝게 해주고 배우자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해주는 진정한 사랑의 동반자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는가? 나도 모르게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아내에게 미안하기 그지없다. 아니 어느 때인가 초저녁부터 일찍 잠들어 코를 크게 골면서 자는 아내를 옆에서 물끄러미 쳐다본적이 있다. 그런데 요즘들어 그 횟수가 점점 늘어나기만 한다. 얼마나 삶의 현장에서 고단했으면 집에 들어 오자 마자 저렇게 잘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한없이 내 자신이 부끄럽고 아내가 애처롭기까지 했다. 여기까지 나의 삶을 달려올 수 있었던 것도 내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룬 것 같지만 실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드러나지 않은 아내의 헌신과 사랑이 녹아져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불현 듯 이름모를 어느 동시집 제목이 가슴을 저미어 오게 한다. '하나가 아닌 둘은 세상의 모든 것을 헤쳐가고도 넉넉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그렇다.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랑하는 사람은 매우 소중하다. 그 분들의 덕분에 함께 행복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한해의 끝자락인 섣달에 소중한 그분들의 이름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분 한분 불러본다. 지난날의 고운추억 뇌리를 스친다. 그 중에서도 무엇보다 지금까지 험난한 삶의 여정을 같이 걸어왔고 앞으로도 가보지 못한 미래의 삶을 오늘도 묵묵히 같이 걸어가고 있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아!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음이 최고의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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