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시선 수필가·옥산중 교장

최시선 수필가·옥산중 교장
최시선 수필가·옥산중 교장

요즘 TV에서 방영하는 대하사극이 인기다. 바로 고려 거란 전쟁이다. 나는 통 드라마를 보지 않는데 이것만은 보고 있다. 왜냐하면, 정통사극이고 오랜만에 고려 역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사는 청주 옥산 지역에 강감찬 장군의 묘와 사당이 있다. 지난 추향제 때 졸지에 내가 종헌관으로 참례하였다. 또,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강당 이름이 인헌관이다. 인헌(仁憲)은 강감찬 장군의 시호다.

강감찬! 귀주대첩의 영웅으로만 알고 있던 그분이 내게 이리도 뜨겁게 다가올 줄이야. 나는 단숨에 고려사를 뒤지고 수많은 자료를 살폈다. 또한 영상을 제작하여 유튜브에 올렸고, 학생들에게 인물 강감찬을 설파했다. 강감찬은 우리나라 3대 영웅 중의 한 분이다. 고구려의 을지문덕, 조선의 이순신과 함께 말이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과 강감찬의 귀주대첩, 이순신의 한산대첩을 3대 대첩이라고 한다.

강감찬은 사실 처음에는 문신이었다. 뒤늦게 관직에 나아가 2차 고려 거란 전쟁 때부터 모습을 드러낸다. 고려사를 보면 현종 초기에 잘 나타나지 않다가, 3차 전쟁 즈음부터 기사가 많이 등장한다. 2차 전쟁 때는 현종이 전남 나주로 피신할 때 같이 따라간 것 같다. 강감찬은 현종에게 충언을 아끼지 않았다. 현종에게 위안을 주는 스승 같은 신하였다. 나주 피신도 강감찬의 제안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 열전에 의하면, 강감찬은 청렴하고 검약하여 집안 살림을 잘 돌보지 않았다고 한다. 위기에 빠진 고려를 어떻게 하면 구할 수 있을까 노심초사했다.

3차 전쟁에서 돌아가는 거란군을 대파한 귀주대첩은 고려에 백 년 이상의 평화를 안겨주었다. 몽골의 침입까지로 본다면 이백 년의 평화가 유지된 셈이다. 거란이 세운 요는 귀주에서 크게 패한 후 국력을 상실하여 결국 망했다. 3차 전쟁 때 강감찬의 나이가 70세를 넘었다. 그런데도 상원수가 되어 전쟁에 나아갔다. 오직 구국의 일념 하나로 최고 사령관이 되었다. 귀주에서 강감찬은 기막힌 전략을 구사한다. 이른바 수공작전이다. 소가죽으로 강물을 막았다가 일시에 열어 도망가는 거란군을 몰살시켰다. 그뿐이 아니었다. 갑자기 북풍이 남풍으로 바뀌는가 하면, 휘하 장수들이 때맞추어 장군을 지원했다. 하늘도, 사람도 모두 장군을 도왔다.

진짜 명장은 누구일까. 이런 말이 있다. 용장은 지장을 이기지 못하고, 지장은 덕장을 이기지 못한다. 그러면 덕장이 최고라는 얘기인데 더 뜨악할 게 있다. 바로 덕장은 복장을 이기지 못한다. 용장(勇將)은 용맹한 장수이고, 지장(智將)은 지혜가 뛰어난 장수다. 덕장(德將)은 덕이 있는 장수인데 그러면 복장(福將)은 뭘까. 바로 복을 갖춘 장수다. 이 말의 출처는 분명치 않다. 내가 애써 찾은 바로는, 손자병법이나 삼국지 정도가 될 것 같다. 삼국지 원문에 조조가 조자효를 복장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강감찬은 한마디로 이 모두를 갖춘 장수다. 상원수가 되어 용감하게 나아갔으니 용장이요, 지리를 이용하여 수공작전을 폈으니 지장이요, 사람이 따르니 덕장이요, 하늘까지 도우니 복장이다. 맹자 공손추 하편 첫 문장에 이런 말이 있다. 바로 천시지리인화(天時地利人和)다. 하늘의 때는 땅의 이득만 못하고, 땅의 이득은 인화만 못하다. 인화가 최고라는 얘기다. 논어 헌문편 30장에서 공자는 군자의 도를 말하면서, 어진 자는 근심하지 않고, 지혜로운 자는 미혹되지 않고, 용기 있는 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최시선 수필가·옥산중 교장
최시선 수필가·옥산중 교장

강감찬은 진짜 명장이다. 용장이면서 지장이요, 덕장이다. 인자이면서 지자요 용자다. 하나, 덕장이라도 복장을 이기지 못한다. 항우가 그리 힘이 세었어도 유방을 이기지 못했다. 명장은 운까지 따라주는 복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복장은 아무나 되나. 복을 지어야 한다. 수많은 복을 지었으니, 지은 대로 복을 받는 거다. 네 가지 중에 어느 하나라도 나에게 있을까. 앗,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그저 까마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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