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N시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연결음이 울린 후 친구의 메마른 목소리가 들린다. 일상적인 안부를 물으면서 조심스럽게 친구의 목소리를 살폈다. 이런저런 안부에 대답하던 중 친구는 기어이 촉촉한 목소리를 흘린다.

"나도 살려고 그랬어. 스트레스가 너무 쌓여서."

친구의 남편은 지병으로 병원을 오가던 중 몇 달 전에 세상을 떠났다. 병원을 드나들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고는 하지만 막상 남편이 유명을 달리하자 참 막막하고 기막혀 선뜻 남편의 부고를 주변에 알리기가 힘들었다는 친구. 그 기분이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는 나는 친구에게 매일 전화를 걸다시피 하며 쓸데없는 주제라도 오래 통화를 하곤 했다. 몸이 아픈 남편을 대신해서 일찍이 생활전선에 뛰어든 친구가 바라는 건 오직 남편 자신의 건강뿐이었다는데 그것마저도 지키지 못한 남편이 야속했다고 한다. 현실에서 부딪히는 스트레스에 짜증도 많이 내고 모진 말도 했지만 막상 남편이 떠나고 나자 그 모든 것이 미안하고 못해준 것만 생각난다고 했다. 나는 친구의 평소 심성을 잘 알고 있기에 최선을 다한 그녀에게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라고 했다.

지난 11월에는 위령성월을 맞아 부모님이 계신 배론성지에 다녀왔다. 위령성월은 가톨릭 교회에서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달이다. 살아가면서 어느 날 문득 돌아가신 어머니가 못 견디게 보고 싶을 때면 서둘러 다녀오곤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날도 그립고 아린 가슴을 감싸 안고 대리석에 새겨진 엄마의 사진을 닦고 또 닦으며 훌쩍이고 있는데 누군가 옆에 오더니 말을 걸었다.

"자매님은 어머니가 여기 계시는군요. 그래도 자매님은 나보다 나은 편이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나는 지난 7월에 남편을 잃었어요"

남편을 잃은 자신이 어머니를 잃은 나보다 더 슬프다는 뜻으로 들리는 말이었다. 한숨 쉬듯 바람에 흩어지는 말들을 두서없이 내뱉고 돌아서 가는 모습이 참 쓸쓸해 보여 잊히지 않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삶의 경험 중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이 배우자의 죽음이라고 한다. 얼마 전 서울의 한 고층 아파트에서 초등학생이 던진 돌에 맞아 70대 남성이 사망하였다는 뉴스를 들었다. 참 어이없고 기막힌 가운데 더 안타까운 것은 사망한 남성은 몸이 불편한 아내의 손을 잡고 운동을 다녀오다 변을 당한 것이라고 한다. 방금 전까지 바로 옆에 있던 남편의 죽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고인의 아내는 얼마나 끔찍했을까. 고인의 아내는 여전히 남편만을 찾고 있다는 안타까운 기사는 더욱더 마음을 착잡하게 했다. 흔히 하는 말 들 중에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고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는다'는 말이 있는데 배우자가 죽으면 어디에 묻어야 하는 것일까?

사람들이 꼽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 하나가 아기에게 젖을 물린 어머니와 아기가 서로 눈 맞춤 하는 모습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아이를 키울 때는 그 말이 가슴에 와닿고 공감이 되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요즘 내가 느끼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다정하게 걸어가는 노부부의 모습이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묵직한 사랑이 굳이 가까이 가서 보지 않아도 그들의 뒷모습에서 느껴진다. 보폭을 서로 맞춰주며 걷는 모습 속에서도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가 두런두런 들리고 앞으로 살아갈 소소한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문득 문정희 시인의 '남편'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중략)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는 남자. 나에게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 준 남자'.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때론 짠한 배우자에게 서로 있을 때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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