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채혈하는 곳에 도착하니 호떡집에 불났다는 말이 생각난다. 채혈하려는 이들이 많아 이중 접수를 하고 있다. 도착해 일차 번호표 뽑고 그 번호가 다시 불리면 채혈번호를 받는다. 여러 창구에서 "딩동, 딩동" 소리와 함께 번호가 표시되니 두리번거리며 살펴야 한다. 기다림 끝에 채혈창구에 선다. 빨리 팔을 내밀어야 할 것 같다. "성함 알려주세요." "따끔해요." 그들도 같은 문장을 수없이 되풀이한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반복되는 일에 나 같으면 한 시간도 견디지 못하고 토할 것만 같다. 한 시간 정도 후에 결과가 나온단다.

의사와 면담까지는 아직 한 시간여 여유가 있다. 딱히 할 일이 없어 그곳으로 향한다. 이럴 수가, 여기도 사람들이 가득하다. 수십 명이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겁먹고 접수하니 혈액검사결과가 나와야 하니 기다리란다. 자료가 넘어오는 대로 순번을 잡겠다고 한다. 내 이름이 전광판 대기명단에 오르지 않으니 환자 노릇도 쉬운 일이 아니다.

예정했던 시간을 넘기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초로의 여의사가 앉으라더니 설명을 시작한다. 컴퓨터에 저장된 내 자료를 보여주며 지난번에 한 시술과 앞으로 어떤 과정이 남았는지를 얘기한다. 오 분도 지나지 않아 의사와 면담이 끝나고 뒷사람이 들어온다.

할 말이 없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한다. 몇 시부터 진료를 하는지 몰라도 의사들이 식사나 제대로 할까 싶다. 내 뒤에 대기자들이 있었고, 면담을 마치면 오후엔 수술이 기다리고 있을 게다. 때로 응급환자가 생기면 업무 외 시간에도 불려나올지 모른다. 그런 생활이 일주일 내내 이루어지고 한 달, 일 년을 넘어 은퇴할 때까지라 생각하니 답답함을 넘어 숨이 막힌다.

이 사회에서 의사가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어렴풋이는 알고 있으니 더 기가 막힌다. 누군가 의사가 되려한다면 잘 생각하라고 해야겠다. 의사가 되려면 공부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하고 대학 이상을 십 년넘게 다녀야 하지 않는가? 그 모든 과정을 거치고 세상과 담쌓은 것처럼 사는 일이 어디 쉬울까?

여유와 평안이 있어야 환자를 대할 때 친절과 배려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데 격무에 시달리면 생명을 다루는 이들로서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돈이 좋다지만 기본선을 넘으면 자기실현과 여유를 원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던가? 의사들은 희생정신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것 같다. 내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그들의 삶이 불쌍하다. 개인 삶이 없는 것 같아 나는 전혀 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내가 바쁘다 해도 의사들 같지는 않다. 책 읽을 시간도 있고 멍 때릴 여유도 있다. 하기는 목회일도 천차만별이다. 신자들이 많고 일 벌리기를 좋아하는 이들은 바쁘기 한량없다. 여러 과정을 만들고 진행하면 쉴 틈이 없을 게다. 내 능력과 성격을 알아 많은 일 추진하지 않고 돌볼 이들이 적으니 성경도 읽고 다른 인문학 서적을 볼 여유가 있는 것이리라.

가끔 시장에서 장사하는 이들과 마주친다. 한 해에 며칠 쉬지 않고 성실히 일하는 그분들을 보면서 삶의 의미를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려 열심히 살아간다. 그들의 수고와 노력으로 자녀들이 자라 꿈을 이루는 것을 보면서 만족을 얻기도 할 것이다.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나는 많이 가난하다. 자녀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했다. 열심히 살아 경제적 기반이 단단한 이들을 보며 주눅들 때도 있다. 그렇지만 내 삶이 그들보다 못하다 생각지 않는다. 내 평생 목표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주님을 조금이라도 더 알리는 것이다. 그 일을 위해 내게 허락된 여러 은사를 다 활용하고 싶다. 세상을 바로 보기 위해 나를 둘러 싼 현실과 상황을 왜곡 없이 보려는 것이 내 소망이다.

여유 있게 무언가를 사색하고 수시로 마음과 머리를 비우고 멍하니 있을 수 있는 내 삶이 그런대로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시 살아보라 해도 잘 나가는 의사들 아닌 지금의 나처럼 살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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