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내가 어릴 적에는 방바닥에 요를 깔지 않고 이불만 덮고 잤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등이 배긴다는 사실을 인식하거나 등이 배겨 불편하다고 느껴보지 못했고 심지어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해 먹고 사는 문제가 우선시됐던 터라 방바닥에 요를 깔고 잔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고 푹신한 침대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과분함이었다. 그나마 내가 방바닥에 요를 깔고 자는 호사를 누리게 된 것은 결혼하고 나서부터다.

내가 침대를 상시적으로 사용했던 시점은 결혼 후 5년쯤 됐을 때이고, 돌침대를 사용했던 시기는 결혼 후 15년쯤 됐을 무렵이다. 예전에 침대를 이용할 때 요 역할을 대신했던 매트리스 덕분에 등이 배기는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돌침대를 사용하고 나서부터는 등이 배겨 불편함을 겪어야했다. 아내와 나는 돌침대 위에 매트리스를 깔고 잘 생각을 아예 못했고 궁여지책으로 양모로 만든 요를 겹쳐 깔고 지금껏 사용해왔다. 요즘 들어 갑자기 아내가 허리가 아프다는 말을 빈번하게 했는데 그 때쯤 돌침대 위에 깔았던 요 일부를 빼낸 것이 원인이었음을 알아차렸다. 아내의 허리 통증을 겪고 난 후 18년째 돌침대 위에 요를 깔고 잤던 방식을 바꿔 매트리스를 구입해 깔았다.

돌침대 위에 깔았던 요를 매트리스로 교체하면서 언젠가 A에게 들었던 요와 얽힌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A는 엄마를 모시고 언니와 함께 새만금방조제를 지나 선유도와 채석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구경하고 저녁 시간에 숙소인 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단다. A는 엄마가 여행의 여독을 푸실 수 있도록 방바닥에 요를 깔아 드렸고, 요가 두툼하지 않아 방바닥에 엄마의 등이 배길 것이 염려되어 엄마가 누울 자리에만 여분의 요를 하나 더 깔아 드렸다고 했다. 이에 엄마가 대뜸 "왜 나만 푹신하게 요를 더 깔아 주느냐"며 못마땅하고 퉁명스런 어투로 버럭 화를 내듯이 말했단다. A는 "요가 두툼하지 않아 방바닥에 엄마의 등이 배겨 불편하실 것 같아 도톰하게 깔아 드렸지요."라고 담담하게 답했단다. 곧바로 "나는 방바닥이 푹신한 것 보다 딱딱한 것이 더 좋은데 너만 요를 얇게 까느냐"라는 엄마의 핀잔을 들었단다. A는 엄마를 배려해서 요를 두텁게 깔아 드렸는데 고맙다는 말 대신에 오해받고 비난받았다는 서운함과 속상함에 밤새 잠을 설쳤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방바닥이나 돌침대 위에 요나 매트리스를 깔지 않고 눕게 되면 등이 배길 만큼 딱딱하여 불편했고, 방바닥이나 돌침대 위에 요나 매트리스를 깔고 눕게 되면 등이 푹신하여 안락했다. 방바닥이나 돌침대 위에 요나 매트리스를 깔지 않고 잘 때는 방바닥이나 돌침대가 몸을 받아들이는 수용성이 낮아 등이 배겼다. 반면에 방바닥이나 돌침대 위에 요나 매트리스를 깔고 자면 요나 매트리스가 몸을 받아들이는 수용성이 높아 등이 폭신했다. 수용성은 다른 것으로부터 사물을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관계에서도 정서적으로 경직되고 상대방에 대한 수용성이 낮게 되면 방바닥이나 돌침대처럼 냉랭하고 냉정한 기운이 감돌아 불편해지고, 요나 매트리스처럼 심리적으로 유연하고 상대방에 대한 수용성이 높게 되면 요나 매트리스처럼 온화하고 온순한 기운이 감돌아 편안해진다.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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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의견이나 말을 부정적으로 거부하는데 익숙한 사람이 있고, 상대방의 말이나 의견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익숙한 사람도 있다. 최근 아내의 말에 내가 반응할 때 '맞아'라는 말 대신에 '아니'라는 말이 입에 달라붙어 습관적으로 나와 기겁을 했다. 아내가 '아니'라는 말로 반응할 때마다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아도 무의식적으로 튀어 나와 난감했다. 소통할 때 '아니'라는 반응은 상대방의 마음과 언어에 대한 수용성이 낮은 말이고, '맞아'라는 반응은 상대방의 마음과 언어에 대한 수용성이 높은 말임을 실감했다. 소통할 때 '아니'라는 반응은 방바닥과 돌침대가 몸을 밀쳐내듯 상대방을 거부하고 부정하는 언어이고, '맞아'라는 반응은 요와 매트리스가 몸을 받아들이듯 상대방을 수용하고 긍정하는 언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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