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책상에 앉아 오른쪽으로 조금만 눈을 돌리면 원망스레 등을 보이는 한 가족 열두 식구가 있다. 사십 년 이상을 데리고 다니며 눈앞에 두고 돌보지 않은 그들, 그들을 굳이 놓아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긴 세월 속에 그들과 대화한 것이 한 나절이나 되려나. 망각 속에 등만 보이며 살아온 그들에게 내가 요구한 것은 내 허세를 채워달라는 것이다.

등에선 낡았어도 금빛으로?더브로드맨바이블커멘터리?라는 꼬부라진 글자들을 쏘아댄다. 이제는 펼치면 알 수 없는 활자들이 주르륵 흘러내릴지 모른다. 그동안 참아온 눈물처럼 내 방을 활자들로 채울 것만 같다. 그들을 눈에 잘 띄는 곳에 위리안치(圍籬安置)해 두고 내 방에 들어온 누군가 저런 서적도 보느냐고 묻기를 바란 건 아니었을까? 그랬으면 '아, 이거.' 하고 잰체하며 잡아 빼어 아무 쪽이나 펼치고 크게 소리 내어 읽었을 게다.

마침내 '대단하시네요.' 라고 말하면 별 것 아니라는 듯 꽂아두고 흐뭇해했으리라. 아쉽게도 아직까지 그렇게 물어준 이가 없었다. 문제는 내 삶의 자세였다. 내게 그것들은 설교를 위한 참고자료였는데 준비에 그만한 시간을 쏟지 못했다. 한쪽만 보려 해도 족히 한두 시간은 걸렸을 테니 아무리 좋다한들 그림의 떡이다. 마음으로는 언젠가 저것들을 술술 읽고 알차게 말씀을 전하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었다. 오랜 세월 여러 차례 이사했지만 그 소망은 흔들리지 않았고 그들은 챙겨야 할 짐으로 나와 방을 함께 했다.

지금도 눈에 띄는 곳에 얌전히 모셔져 있는 것이 어지간히, 질긴 꿈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온 게다. 사용하지 않아 험한 모습은 아니다. 나름 동안이라 할까. 그들은 이제 체념에 이르렀을 게다. 그 긴 세월 무시로 일관하는 내게 얼마나 원망을 품고 또 품었을까 생각하면 미안하기 그지없다.

그들도 불쌍하지만 더 가련한 것은 나 자신이다. 아직도 그들을 놓아주지 못하고 몸의 한 부분처럼 허세와 헤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찾아오는 이들도 별반 없는데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언젠가 그래 언젠가는 내게도 햇볕들 날이 반드시 있을 게고 그날에는 아직 동안(童顔)의 등 푸른 너희들에게 내 마음과 시간을 쏟아주겠다는 망상에 붙들려 있는 것인가?

그런 날은 오지 않으리라. 기다릴 것 없고 이젠 오지 않는다고 그리 서글프지도 않다. 그런 날이 혹여 온다면 지금도 그들을 향해 가지 않는 손길이 더욱 바빠질 그때에 가겠는가. 시간은 더 쪼들리고 할 일은 늘어날 텐데, 그들과 함께 할 시간을 내기 어려울 게 뻔하다. 이제 놓아주고 원하는 이들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옳지 않은가?

허세를 따지자면 어찌 그들 만일까? 읽지 않은 책들이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는데 필요한 중고 책 외에 택배비가 아깝다는 핑계로 사들이는 책들이 여럿이어서 불쌍하다. 몇 권 되지 않는 책에서 정작 필요한 것은 찾지 못한다. 내 무능에 아직도 허세가 끈질기게 동거하고 있다. 남들은 관심도 없건만 내 속이 부실하니 보여줄 것을 챙기고 있는 게다. 오랜 세월 지나간 허름한 고물 같은 것들을…

마음 한 편에서 비워라 놓아주라 하건만 사십년 가둬온 그들을 보는 내 눈은 아직도 끈적끈적하다. 마치 내게는 유효기간이 남아있다는 것처럼. 내게 붙여진 어울리지 않는 호칭도 몇 달 지나면 사십 년이 되는데 허망한 일이다. 아직 벗지 못한 허세의 껍질이 한없이 불편하다. 여러 번 되풀이 되는 꿈처럼 준비 안 된 내 삶이 끝없이 이어지는가 보다. 지치고도 남을 세월을 내게 와 묶여있는 한 가족 열두 식구가 애원하는 듯하다. 과거는 다 용서해 줄 테니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가져주던가 아니면 풀어 놓아달라고…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놓아주어야 하건만 이젠 그동안 홀로 들인 정이 아쉽다. 그들을 보며 허세로 부풀었던 내 마음이 얼마였던가.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라도 올해만 참아다오, 새해에는 어떻게든 결단을 내려 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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