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영희 수필가

플랫폼에서 환승했다. 선택하지 않고 계묘년 행에서 갑진년 행 ktx에 탑승했으니 떠밀려 온 느낌이다. 미련이 남아 툭툭 털지 못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뒤돌아본다.

시간이란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너며 생각해 보니 행복했던 일도 많았지만, 시기를 놓친 일과 서두르다 접촉 사고를 낸 일이 가장 걸린다. 왜 그랬을까 아무리 돌아봐도 당혹스럽고 안타깝다. 토끼가 제 재주만 믿고 달려가다가 낮잠으로 거북이한테 진 일화가 생각났다. 엄마가 보셨으면 낮잠 자는 토끼를 깨워주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지만, 전적으로 내 불찰이다. 시간은 원래대로 되돌아갈 수 없는 불가역성을 가지고 있음을 인지할 수밖에. "돌려보면 아쉬운 필름만이 허공에 돌고 다시 잡으려 손을 내밀어봐도 기약의 언질도 받지 못한 채 빈손입니다."라고 한 시인의 시구를 읊조리며 다 그렇게 산다고 마음을 다독였다. 권희돈 시인은 "마음이 부리는 도술에 속지 마세요 ~ 흐르는 강물처럼 앞으로만 나아가세요."라며 무심천을 노래했다. 발레리가 "시는 춤이요. 산문은 산책이다."라고 한 말을 의지하게 됨이다.

그전에 어른들은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고 하거나 문틈으로 말을 타고 가는 사람을 보는 것과 같다고 했다. 설마 하고 의구심을 가진 게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참말 그렇다고 무릎을 치고 있으니, 직접 겪어봐야 실감을 하고 인정하는 게 인간의 숙명이랄지. 이를 담담하게 "사람들은 덕담을 전하면서 또 한 해를 열겠지." 하고 체념한 듯 시인은 읊었나 보다.

올해는 청룡의 해이다. 역학의 십간에 갑·을은 청색이고 병·정은 붉은색, 무·기는 황색, 경·신은 흰색, 임·계는 검은색을 뜻하니 갑진년은 청룡의 해가 된다.

우리말로 미르라 하는 용은 아시아의 신화와 전설 속에 등장하는 상서로운 동물이다. 신령스럽고 초월적으로 인식되었고 권위와 위엄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임금의 얼굴을 용안이라 하고 임금이 앉는 자리를 용좌라 하며 임금이 입던 정복을 곤룡포라 한다.

지난 임진년이 가까워져 올 무렵이었다. 지인이 물 위로 힘차게 뛰어오른 잉어가 용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담은 민화 어변성룡도를 선물했다. 받을 때는 뭔 이런 것을 했는데 그해 부부가 부이사관과 서기관으로 나란히 승진해 지면을 장식했다. 지인의 깊은 뜻이 오롯이 전해 와, 살면서 그런 선물을 하고 싶었으나 쉽지 않았다. 그해 안도현 시인이 잘 늙은 절이라고 노래한 완주에 있는 화암사에 들렀다. 입구에 이런 설화가 적혀 있었다. 임금님한테 연화공주란 예쁜 딸이 있었는데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렸다. 백약이 무효여서 임금님은 불공을 드렸고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네 불심에 감동하여 공주를 낫게 할 약초를 알려주겠노라.' 말씀하시며 노란 꽃잎을 주셨다. 잠에서 깨어난 왕은 이 연꽃을 찾아보라 명했다. 엄동설한에 꽃이 있을 리 만무했으나 신하들이 하얀 눈 위에 핀 노란 꽃잎을 발견했다. 그게 바로 불명산 깊고 험한 바위 사이에 피어난 복수초이다. 신하가 꽃을 꺾으려고 다가가며 나무 뒤에서 보니, 산 밑 연못 속에서 용이 나타나 꽃에 물을 뿌려주고 다시 연못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꽃을 달여 먹은 공주의 병은 말끔히 나았고, 부처님의 은덕에 감화받은 임금님은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절을 지었다. 그래서 바위 위에 피는 꽃이란 뜻의 화암사라 했다고 한다.

용이, 볼 수 없는 상상 속의 동물이듯 올해는 보이지 않는 것에도 관심을 두고 조급함에서 벗어나 좀 더 천천히 기도하는 자세로 걸어가야겠다. 지금처럼 좋은 시를 읊조리며 나 자신을 위로하고 상대방도 공감이 되게 하고 싶다. 연보랏빛 들꽃이 그윽한 향을 전파하듯이.

이영희 수필가
이영희 수필가

대작을 쓰겠다는 욕심보다 정성껏 한 발짝씩 걸어 산의 정상에 도달하는 이치를 실천해야겠다. "아직도 내게는 몇 시간이 남아 있다. 지금은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라는 시구를 읊조리며 희망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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