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누구나 호의를 베풀고 신세를 지며 살아간다. 마음이 성숙한 사람은 호의나 도움을 받게 되면 마음이 흐뭇해지고 즐거워져 호의나 도움을 준 사람에게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신세진 것을 보답하려고 마음먹는다. 반면에 마음이 미성숙한 사람은 호의나 도움을 받게 되면 기대했던 만큼 충족되지 않았다며 호의나 도움을 준 사람에게 고맙다는 마음으로 화답하지 못하고 못마땅해 하거나 서운해 한다. 호의를 받은 사람이 오히려 호의를 베풀어준 사람에게 흉이란 화살을 쏘며 공격하거나 뒷담화로 폄훼시킨다.

최근에 누군가의 호의와 배려가 누군가에게는 흉 볼거리가 되거나 뒷담화에 오를 수 있음을 실감했다. 셋째 사위였던 P는 장모님이 서울에 있는 병원에 진료가 있어 모시고 다녀왔다고 했다. 평소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은 P는 청주에서 서울까지 가는 동안 자동차에 국한된 공간에서 장모님과 함께 있어야 되는 겸연쩍은 불편함을 덜기 위해 딸을 동행시켰다고 했다. P는 장모님을 모시고 병원 진료를 다녀오는 일에 귀찮다거나 마지못하게 여기지 않고 마음과 시간을 흔쾌히 냈다고 했다.

P는 장모님을 병원에 모시고 다녀온 후 며칠 뒤 처갓집 식구들만 공유하는 단톡방에 처형이 "엄마가 말수가 적은 셋째 사위와 병원을 다녀오느라 불편하고 힘들었다고 하네요. 다음 병원 진료에 엄마를 모시고 다녀올 수 있는 사람 없나요."라고 공지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장모님이 자신과 병원 진료를 다녀오며 느끼셨던 불편한 감정을 처형에게 드러냈고, 처형은 이를 가슴 속에 담아두지 않고 형제자매 단톡방에 고지했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됐을 때 얼굴이 화끈거렸고 서운한 감정이 불끈 치솟았다고 했다.

K는 엄마가 척추 시술로 분당에 있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모셔다 드렸다는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그 무렵 코로나 환자가 다시 급증하면서 병원에 머물며 간병을 할 수 없게 되어 퇴원하는 날 병원에 올라갔다고 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척추 시술을 한 엄마에게 가방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엄마 가방을 건네받아 멨단다. K는 척추 시술을 담당했던 의사에게 시술 결과를 듣기 위해 갈 때에도 엄마 가방을 메고 다녀왔다고 했다. 앞 환자들의 진료가 밀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담당 의사와의 면담을 마친 후 병실에 도착했단다. K는 엄마에게 "시간이 오래 결렸네. 힘들었겠다. 고생했네."라는 인정과 지지를 받는 말을 기대하던 순간 엄마가 면박을 주듯 퉁명스럽게 "너 왜 내 가방 들고 갔니?"라며 질책하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K는 엄마의 가방 안에 자신이 알면 안 되는 것이 들어 있는데 엄마가 안 보이는 곳에서 가방을 뒤져 본 것처럼 의심받는 존재로 전락된 상황이 이해가 안 되어 서운하고 황당하기까지 했다며 흥분했다. 자신이 엄마에게 가방을 들어드리겠다고 말했을 때 엄마도 흔쾌히 승낙했고, 엄마에게 가방이 시급하게 필요했던 일도 없었고, 척추 시술을 한 엄마에게 가방이 불편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방을 들어드렸는데 마음을 낸 배려와 호의가 나무람으로 되돌아온 듯해 속이 상하고 씁쓸한 감정이 들었다고도 했다.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미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감정에만 머물게 되어 상대방의 감정이 어떨지에 대해서는 마음을 내지 못한다. 성숙한 사람은 누군가의 배려와 호의가 자신의 열등감을 자극시켜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역동을 경계하고, 누군가의 배려와 호의를 폄훼하는 것으로 자신의 우월감을 충족하려는 심리를 경계한다. 허물없이 지내는 가까운 관계일수록 배려와 호의를 받게 될 때 고맙다는 마음을 온전히 전하게 되면 상호 존중하는 대등한 관계로 이어지게 된다. 상대방의 마음 씀씀이를 폄훼하고 자기 마음만 살피는 악성적인 이기심은 사랑 대신 권력을 휘둘러 관계를 악화시킨다. 살면서 배려와 호의를 받게 되면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고 예의이다. 배려와 호의를 베푼 사람에게 오히려 흉을 보거나 폄훼시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무시이고 무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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