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영기 전 충북교육과학연구원장

물의 나라로 불리는 조지아 카페에 앉아 보르조미 한잔을 시켰다.

러시아의 가수 알라푸카체바(Alla Pugacheva)가 부른 '백만 송이 장미' 노래가 나지막하게 들려온다.

사랑 밖에 모르는 바보 같은 남자가 그림 속에 담긴 웃음과 눈물을 팔아 산 백만 송이 장미를 그녀에게 드린다는 고백이다.

떠나가는 여인에게 차갑게 버려진 자신의 사랑을 잊지 말아달라는 순정의 가사가 마음 깊숙이 파고든다.

고희를 맞은 기념으로 네 개의 보석 같은 아이들이 여행을 보내줘 이곳에 왔다. 아내는 아이를 낳고 기르며 살림살이와 가정생활을 꾸려가느라 곁눈질 한번 할 새가 없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만나서 지고지난 한 세월을 살아왔다.

나 또한 직장생활과 대학원 공부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며 반평생을 살아왔다.

가난을 탓하거나 부자를 부러워할 틈도 없었고,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여행하기란 더 더욱 어려웠다.

이제야 잠시 삶의 호흡을 멈추고 평온한 숨고르기를 하는 시기이다.

아내의 주름진 손을 가만히 잡아보고 가슴 찡한 살가움을 느낀다.

웅크리고 있던 첫사랑의 뜨거움이 솟아오른다.

그 시절 꽃다발 선물로 사랑을 고백하면, 고요했던 마음이 흔들려 출렁거렸고, 심장이 숨 가쁘게 쿵쾅거렸다.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만 싶은 심정이다.

지그시 다문 입술에서는 아무 말이 없지만, 마주치는 눈빛이 무엇을 말 하는지 전율로 다가온다. 화려한 프러포즈와 다이아몬드 반지 선물은 없어도 가슴에서 가슴으로 통하는 사랑으로 충분했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는 고즈넉하다.

국민을 품은 조지아의 어머니상이 언덕 높은 곳에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다. 벼룩시장을 걷다가 여인의 그림이 있는 액자를 보았다.

예쁜 원피스에 아름다운 꽃을 들고, 한 남자의 사랑을 듬뿍 받는 아리따운 여인의 모습이다.

동화에 나오는 공주처럼 신비롭다. 피카소에게 깊은 영향을 준 니코 피로스마니(Niko Pirosmani)그림이다.

가난한 화가의 첫사랑 이야기는 낭만적이다.

상가의 간판을 그리며 하루하루를 생활하던 피로소마니는 평소 짝사랑하던 아름다운 여배우 마르가리타가 시그나기에 공연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집과 그림을 팔아서 그녀가 묵는 호텔 앞 광장을 백만 송이 장미로 온통 꽃밭을 만들어 연모의 마음을 표현했다.

화가의 사랑 표현에 감동한 마르가리타는 그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녀는 다음 공연장으로 떠나가 버린다. 잠시 화려하게 피었다가 시들어 버리는 꽃만큼이나 허무한 사랑이지만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정열적인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는 푸른색으로 그린 여인처럼 순수한 사람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두 사람이 손을 꼭 잡고 건물 출입문을 나서고 있다.

행복한 여생을 보낼 꿈에 부풀어 기쁨의 미소를 짓는다.

이곳은 결혼을 축복하며 기리는 마음으로 시장이 혼인신고를 허락하는 도장을 직접 찍어준다.

복잡한 과정의 시간과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굳이 결혼식을 하지 않고서도 두 사람의 보금자리를 꾸밀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의 만남을 통해 언제라도 새 출발할 수 있는 조지아의 시그나기를 사랑의 도시라고 부른다. 인생 2막의 새로운 꿈을 바라보는 붉은 노을이 서녘 하늘에 걸렸다.

어둑어둑 다가오는 땅거미 속으로 지난 삶의 아픔과 고난의 눈물을 묻었다.

무던히도 참고 견뎌낸 삶이 고맙고 감사하다.

세월이 흘러가고 청춘이 시들어도 아름다운 본향을 갈 때까지 우리 만남을 잊지 않고 살아야지. 인생의 강에 흐르던 생의 기쁨과 감사가 사랑의 도시 시그나기에 머문다.

피로스마니가 심혈을 기울여 번 재산으로 백만 송이 장미를 사서 프러포즈하는 열정은 세간의 사람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수많은 꽃 중에 장미꽃을 선택 했다. 붉은 장미꽃 색깔은 강렬하고 짙은 사랑의 느낌을 주고, 심장이 고동치게 한다.

끝내 이루지 못한 그의 사랑은 지금도 우리에게 연민을 느끼게 한다.

밤하늘에 별이 쏟아지는 사랑의 도시에서 나도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아내를 향해 세레나데를 불렀다.

김영기 전 충북교육과학연구원장
김영기 전 충북교육과학연구원장

빨간 카펫 위로 남은 인생여정의 발걸음을 옮기고, 파란 하늘을 캔버스삼아 붓을 들어 행복한 그림을 그려본다.

사랑밖에 모르는 바보 같은 시그나기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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