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은희 수필가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허리춤을 잡은 양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한다. 석불은 밭 가 옹색한 헛간에 자리한다. 천정이 뚫리고 뒷벽 토담은 무너진 지 오래인 것 같다. 좁은 공간은 거센 바람이라도 불면 바로 무너질 듯하고, 주위에는 밭에서 나온 폐비닐로 너저분하다. 더욱이 흉한 것을 가리려고 얼개로 짠 검은 장막을 치고 있다. 정녕 이곳에선 석불을 위하여 마음을 내줄 분이 없는가 보다. 

가장 낮은 곳에 자리한 석조여래좌상이다. 주변의 환경과는 다르게 석불은 엷은 미소를 짓고 계신다. 얼마 전 사진 전시전에서 불상과 불탑을 관람하다 마음을 뒤흔든 불상이다. 사진 속 113개 불상 중 석불이 자리한 공간이 너무나 초라하여 나의 마음을 이끈 것이다. 음성군 원남면 보룡리 석조여래좌상은 인적없는 산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촌마을을 지나 논둑길도 건너야만 한다.

그렇게 주민에게 물어물어 간 길은 다시 돌아 나와야만 하는 산기슭 아래이다. 다 쓰러져가는 허저분한 공간에 자리한 석불을 바라보며 한숨이 절로 흐른다. 정녕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나 보다. 불상이 자리한다는 건 이 자리에 사찰이 있었다는 증거가 아닌가.

주위를 둘러봐도 몇몇 민간 주택과 밭이 보일 뿐, 당간지주나 석탑은 찾아볼 수가 없다. 더욱이 중국에서나 일어날 법한 이야기가 이곳에서도 벌어진 것이다. 아들을 낳게 해준다는 속설을 믿고 석불에 누런 페인트칠을 했단다. 누군가 해괴망측한 일을 벌여 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한 부분도 있단다. 제작 시기가 고려 후기로 추정되는 석조여래좌상은 보관을 쓰고 있어 보살인 듯 보이나 머리 모양이나 옷 주름, 수인 등에서 석불과 흡사하다. 나는 역사학자도 전문 답사가도 아니다. 우리의 전통문화재를 좋아하는 후인은 허름한 곳에 모셔진 석불이, 오래된 문화재가 방치된 것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얼마 전 찾아간 제주도 빛의 벙커는 공간의 역사를 회자할 수 있는 자리로,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명소이다. 세잔 명화에 이어 국내 작가인 이왈종 화가의 '중도의 섬 제주'의 작품이 펼쳐진다. 그림이 스치다가 얼핏 문자가 보인다. '그럴 수도 있다. 그것이 인생이야.'라는 문장에 사로잡힌다. 이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던 석불이 연상되며, 원망스럽던 그 누군가에게 입말이 튀어나온다. '그래, 그럴 수도 있어'라고. 그래, 아들이 얼마나 갖고 싶었으면 귀한 불상에 페인트를 칠했겠는가. 무엇보다 문화와 역사가 순조로이 흘러 사찰이 존재하였다면, 석불도 초라한 곳에 자리하진 않았으리라.

삶의 역사적 공간이 흔적 없이 사라지면, 과연 과거의 문화유산은 어디에서 찾으랴. 더는 무뎌진 세상 탓만 하지 않으리라. 다음날 문화재 돌봄센터에 한 점 남은 문화유산에 관한 도움을 요청한다. 석불 주변의 상황을 알리는 설명과 현장 사진도 보내고 사후 조치를 알려달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그 이튿날 소식은 이미 음성군에 도움을 구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단다. 그래, 후미진 산골까지 누가 찾아가랴. 하지만, 덧붙이는 말은 이심전심이다. 문화재 돌봄센터의 도우미가 현장에 나가 주변 정리와 밭 주민과 소통하겠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인가. 더불어 석불이 소외된 곳에 있어 관리가 어려우니 향토민속관으로 옮기는 것을 제안한다. 

 이은희 ㈜대원 경영지원본부장·수필가  
 이은희 수필가  

세상일도 사람의 미래도 모른다. 주위에 내 의도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이 많다. 잘 나가던 분이 추풍낙엽처럼 바닥으로 떨어지고, 무일푼의 사람이 갑부가 되었다는 풍문도 돈다. 하지만, 나는 평생 땀의 대가로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다. 내 앞에는 제일 낮은 곳에 수백 년 자리한 석불도 변함없이 미소를 짓고 있지 않던가. 삶의 비애를 느끼는 절박한 순간에 '그럴 수도 있어.'라는 말을 품어도 좋으리라. 그러나 앞서간 선인의 역사와 문화는 정체성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만, 선인이 남긴 석불을 보존하는 일도 우리의 몫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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