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얼마 전 일이 있어 청주에 다녀왔다. 출발할 땐 눈이 안 내렸는데 청주에 도착하니 싸락눈이 살짝 흩날렸다. 바닥을 보니 이미 눈이 내렸었고 어느 정도 멈추고 있는 중이었다.

모처럼 보는 눈이 반가워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마침 며칠 전 휴대폰을 바꾸었는데 예전 것보다 잘 찍혔다. 몇 번이나 안 바꾸려다 바꾸었는데 잘했다 싶었다.

휴대폰을 바꾸고 눈을 처음 찍은 것인데 아주 선명했다.

예전에 눈을 찍으면 멀리 보이는 풍경사진을 주로 찍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가까운 곳을 많이 찍는다. 발자국도 찍고, 바로 옆 전봇대와 쭉쭉 뻗은 전깃줄도 찍고, 담 위에 소복이 내려앉은 눈도 찍는다.

그러다 몇 해 전 우연히 작은 잎사귀에 눈이 소복이 쌓인 것을 찍었다. 오목한 잎사귀가 마치 숟가락처럼 하얀 눈을 담고 있어 신기했다. 멀리서 보면 밥 같기도 하고 설탕 같았다.

청주에서 눈앞에 펼쳐진 것이 딱 그때 그 모습이랑 닮았다. 더 눈이 내렸다면 정말 소복 했을 것이다. 다시 만난 풍경에 찰칵, 찰칵 여러 번을 찍었다.

찍은 사진을 보니 몇 년 전 쓴 동시 '잎사귀 숟가락'이 떠올랐다.

<서리까지 맞고/혼자 남은 잎사귀//눈 내리는 날/잎사귀는 숟가락 되어/소복이 눈을 담아/햇살에게 먹이고//툭!//떨어졌다>

잎사귀는 여러 모양인데 특별했다. 나도 모르게 "아~"하고 입을 벌릴 뻔했다.

아마도 어릴 적에 잎사귀 숟가락에 담긴 눈을 보았다면 "아~" 하고 입을 벌렸을 것이다. 그리고는 다가가 쓰윽 먹었을 것이다. 예전에는 항아리 뚜껑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을 보면 입을 대고 먹기도 했다. 마치 솜사탕 먹듯 입술에 눈을 묻히며 먹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햇빛에 반짝일 때는 꼭 설탕 같았다.

어릴 적에는 설탕이 정말 귀했다. 어머니는 봉지에 담은 설탕을 쓰고 난 후 고무줄로 꽁꽁 묶었다. 눅눅해 질까봐 신경을 많이 썼다. 그러다 무슨 병인지 병에 붙은 상표를 떼고 박박 닦았다. 그 투병해진 병에 설탕을 담았다.

어머니가 없을 때 찬장에 넣어 둔 설탕이 담긴 병을 꺼냈다. 투병한 유리병에 보이는 설탕은 더 달콤해 보였다. 보기만 해도 달콤한데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아주 아주 조금만 먹고 싶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 손은 유리병 뚜껑을 열고 있었다. 어머니가 얼마나 꽁꽁 닫아놓았는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얼굴이 벌겋게 되어서야 뚜껑이 열렸다. 아주 작은 숟가락을 넣어 퍼낸 다음 손바닥에 탁탁 털었다. 혀를 살짝 내밀어 설탕을 찍어 먹었다. 온몸이 황홀함으로 번졌다. 얼른 정신을 차렸다. 병뚜껑을 꽉 닫고 흔들었다. 퍼 먹은 흔적을 말끔히 지웠다.

그리고 얼마 후 달달한 설탕이 자꾸 떠올라 견딜 수 없었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찬장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설탕이 두 병이나 있었다. 찌릿! 온 몸에 전기가 흐르듯 행복한 전율이 흘렀다. 드디어 내 손은 설탕이 담긴 병으로 향했다. 앞으로는 설탕을 몰래 먹지 않겠다고 마음먹었기에 이번에는 숟가락에 듬뿍 설탕을 담았다.

설탕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그대로 숟가락이 올라오게 할 때였다. 대문 여는 소리와 함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나는 입안에 설탕을 툭 털어 넣었다. 그때 부엌문이 열리고 어머니가 들어왔다. 나는 얼른 설탕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그건 설탕이 아니라 소금이었다. 어머니는 설탕과 소금을 나란히 담아 놓았던 것이다. 짠 소금을 먹으니 눈물이 툭 튀어나올 것만 나왔다. 소금처럼 짠 굵은 눈물이.

성인이 되어 첫 커피를 마실 때는 나의 각설탕 사랑은 특별했다. 지금은 설탕 없이 연하게 커피를 마신다. 하지만 커피를 처음 마실 때는 퐁당퐁당 각설탕을 얼마나 많이 넣었는지 모른다. 더 많은 각설탕을 넣고 싶었는데 작은 커피잔이 너무 아쉬울 정도였다.

이런 각설탕 사랑으로 '주사위의 달콤한 소망'이란 동시를 썼다. 그리곤 작년 계간 동시전문지 '동시 먹는 달팽이'에 실려 많은 사랑을 받았다.

김경구 작가
김경구 작가

<나만 보면 /자꾸 던지고 싶은가봐/올라갔다 내려갔다 어지러워//그럴 때면/점을 몽땅 빼서/

무당벌레에게 주고 싶어//그럼 난/하얗게 빛나는/달콤달콤/각설탕이 될 거야>

왠지 오늘은 설탕처럼 달콤한 하루가 펼쳐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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