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영기 전 충북학교육연구원장

송쿨라에서 기차는 피낭섬으로 향했다. 조지타운의 호텔에 숙소를 정하고 시청앞 잔디밭 길을 걷는데, 불어오는 바닷바람의 따스한 습기가 얼굴을 덮친다. 시원하다기 보다는 후덥지근한 기분이다. 거친 바다 물결이 철썩거리며 백사장 위로 밀려온다. 해안을 따라 세워진 벤치에 잠시 앉았다. 히잡을 쓴 여인들이 지나간다. 온몸을 검은 천으로 가리고 눈만 보이는데 마치 마트료시카 인형(Matryoshka doll)을 보는 것 같다.

검은 색의 부르카 옷을 입은 이슬람여인이 맞은편 벤치에 앉는다. 니캅으로 얼굴을 가렸기 때문에 눈만 보인다. 짙은 눈썹과 검은 눈동자만 보일뿐 몸 전체가 검은 옷으로 싸여 신비로움을 갖게 한다. 가져온 보따리를 풀어 음식을 꺼냈다. 남편과 함께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아내는 니캅을 살며시 한손으로 들고 음식을 입에 가져다 먹고는 다시 니캅을 내린다. 이렇게 비밀스럽고 놀라운 광경을 처음 보았다. 외부 사람들에게 얼굴을 보이면 안 되는 모양이다. 얼마나 불편할까. 밥을 먹을 동안만이라도 니캅을 내려놓고 먹게 할 순 없을까. 다른 사람들에게 얼굴을 보이면 마음을 빼앗긴다는 말인가. 안쓰러운 마음이 가슴에서 뭉클뭉클 소리쳐 올라온다.

이슬람교에서는 천사와 성인의 영혼은 향을 피우는 곳으로 찾아오고, 향을 피우는 곳에서는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생긴다고 믿는다. 그 향이 천국에서 오며 또 천국으로 갈 수 있는 매개체로 여긴다. 여인이 부정한 짓을 하거나 얼굴을 보이면 천국의 향기를 맡을 수 없다고 하여 집밖에 나올 때는 저렇게 철저히 검은 옷으로 몸을 가리는 것이다. 오로지 남편만 그 얼굴을 볼 수 있단다.

벤치에 앉은 아내를 살펴보았다. 나시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다. 한평생 나만을 의지하며 살아온 여자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머리에서 취한 것이 아니어서 나를 지배하지 않으며, 발에서 취하지 않았기에 종처럼 여기며 살지 않아도 된다. 갈비뼈에서 취하여 창조된 아내이기에 인생의 동반자요. 고난의 삶을 지고 함께 걸어온 반려자다.

아브라함은 아내와 여종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다. 야곱은 두 명의 아내를 두었고, 솔로몬은 칠백 명의 후궁과 삼백 명의 첩을 거느리며 살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둘째부인까지 두고 살던 시대가 있었고, 암탉이 집 안에서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살림만 하도록 한 적이 있다. 식당에 가면 메뉴판의 글자를 읽을 수 없어 음식종류가 어떤 의미인지 몰라 남편이 시키는 것을 따라 시켜야 했다. 셈하는 것이 부족하여 시장에서 물건을 산 후, 돈을 주고 나면 거스름돈을 가게 주인이 주는 대로 받고 돌아서야 했다. 여자아이를 배움터에 가지 못하게 하여 글을 모르는 문해할머니들이 아직도 처처에 남아있다.

이슬람은 일부다처제로 네 명의 아내를 둘 수 있다. 여러 명의 아내가 한 집안에 살면 자녀들과의 관계가 복잡해지고, 의견충돌로 평화가 깨질 수도 있는데 말이다. 남자는 다른 여자를 만나도 괜찮고, 여자는 다른 남자와 만나거나 마음을 주면, 죽이는 샤리아(shariah)의 율법이 남아 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인류를 사망에 이르게 한 죄 값인가. 아니면 남자의 갈비뼈에서 취했기 때문인가. 하나의 난자와 정자가 만날 때 온전한 생명체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 창조주의 섭리요 자연연의 순리가 아니던가.

김영기 충북교육과학연구원장
김영기 충북교육과학연구원장

앞에 앉은 이슬람 가족이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히잡으로 둘러싸인 여자의 얼굴을 전혀 볼 수 없다. 어린아이 손을 잡고 남편과 함께 걸어가는 뒷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다. 천국을 향한 소망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모두 똑 같다. 천국의 향기를 맡으려고 순결을 지키며 고난을 참고 견디는 이슬람 여인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이슬람 여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내가 손을 꼭 잡는다. 자유로운 여행을 할 수 있어 기쁘고, 한국 땅에서 태어난 것이 감사하며 고맙단다. 또한 자상한 아버지를 만난 것이 축복이라며 눈가를 적신다. 넘실대는 피낭섬의 파도 소리를 등지고 숙소로 돌아오는 발걸음엔 침묵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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