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난영 수필가

매일 뜨는 태양이지만 새해에 뜨는 태양은 더 큰 희망으로 다가온다. 갑진년 새해 청주문화원 가족들이 영덕 일대로 새해맞이 문화유적답사에 나섰다. 하늘까지도 우리를 축복해 주는 듯 비가 오고 쌀쌀하던 날씨가 청명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영덕 해맞이공원에 도착했다. 청룡이 비상할 듯한 영롱한 은색 빛깔을 품은 푸른 바다가 반긴다. 경건한 마음으로 국가의 안녕과 발전 문화인들의 건강과 축복을 기원하는 축문을 읽고, 만세삼창으로 새해를 맞이했다. 파란 바다를 벗 삼아 삼삼오오 사진을 찍으며, 덕담을 나누는 모습들이 따뜻하고 훈훈해 보인다. 블루로드가 어서 오라 손짓하나 대진항으로 향했다. 대진항은 1971년 국가 어항으로 지정되었다. 오래전 직장동료들과 해파랑길 트레킹할 때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오늘은 한산하다. 낚시하는 사람들도 두어 팀 네댓 명이다. 항구의 정취를 감상하려는 관광객의 방문이 끊이지 않던 곳인데 경기침체 여파이리라. 하루속히 민생경제가 회복되기를 기원한다.

에메랄드빛 눈부신 바다를 뒤로하고, 괴시리 전통 마을로 향했다. 괴시마을은 고려 말 대학자 목은 이색 선생이 태어난 외가 마을로 마을 북쪽에 호지(濠池)가 있어 호지마을이라 불려 왔으나 이색 선생께서 원나라 구양현의 괴시 마을과 풍광이 비슷하다 하여 '괴시'로 불렀다고 한다. 조선 후기 영남지역 사대부들의 주택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현재까지 단일 문중의 문화와 예절이 훌륭하게 전승되고 있어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 고시된 한국의 국가민속마을이다. 영양남씨 괴시파종택을 비롯한 다수의 문화재와 전통 고가옥 30여 호가 남아 있어 조상들의 생활과 멋을 엿볼 수 있다. 200여 년 된 전통의 가옥들이 황톳빛 흙길 따라 머리를 맞대고 있다. 아담한 정원, 토담 길이 조화를 이루는 고즈넉한 분위기는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목은 기념관은 마을 뒤편 높은 곳에 있다. 시간 안에 다녀오기 힘들 것 같아 400여 년 영양남씨 세거의 흔적이자 집성촌을 돌아보며, 고택의 향취와 세월의 흔적을 감상했다. 고가와 어우러진 매화, 목련, 산수유가 꽃봉오리를 터트리며 봄소식을 전한다. 안동 하회마을이나 경주 양동마을보다 규모는 작아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한국의 전통문화와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유서 깊은 곳이다.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의 배웅을 받으며, 장육사(裝陸寺)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장육사는 나옹선사가 태어난 고향으로 1355년에 창건하고 참선하다가 입적한 곳이다. 대웅전에서 부처님께 참배하고 스님께 장육사의 역사를 들었다. 장육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로 비구니 스님만 기거한단다. 맞배지붕 주심포계의 방법으로 간결한 아름다움을 지닌 대웅전부터 건칠관음보살좌상의 국가 보물로 지정된 과정, 경북 문화재인 대웅전 벽화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사찰 규모에 비해 문화재가 많다. 그 외에도 템플스테이, 사찰음식 체험 마당, 나옹문화제와 산사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에 대해 말씀하셨다. 감성을 자극하는 애절한 스님의 눈빛이 마음을 녹인다. 관음전까지 참배하고, 나옹선사가 처음 수행을 시작한 곳으로 여말선초 3대 화상인 지공대사, 나옹선사, 무학대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홍련암까지 잰걸음으로 다녀왔다.

일주문 주변에는 나옹왕사 기념관과 역사문화체험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기념관은 평일에만 개관한단다. 관람은 하지 못했으나 나옹왕사의 숨결을 느끼며, 〈청산은 나를 보고〉를 읊조렸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이 선시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깨우침을 준다.

이난영 수필가
이난영 수필가

조상들의 지혜로운 삶과 역사, 문화유산을 경험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역사는 멈추고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것임을 되새겼다. 신이 준 선물 '오늘'을 보람 있게 보낸 문화원 가족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으나 우리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하나임을 알았다. 기쁨이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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