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은희 수필가

역시나 슬그머니 갈마든다. 뇌 창을 열고 언제 들어왔는지 눈앞을 거스른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나타나 주인 행세를 하는가. 참으로 성가신 사념이다. 의식에서 지우고자 머리를 좌우로 흔든다. 잔상마저 말끔히 지워버리고 싶다. 암묵적 삭제는 잠시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신을 잠깐이라도 풀어놓으면 어느 틈에 숨어드는 잡념이다. 선생 말대로 온몸이 기억하고 있어선가. 지금은 무념무상(無念無想)에 들어야 할 자리, 가부좌를 틀고 명상 중이다.

아무래도 '명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건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명상 중에 이렇듯 머릿속이 복닥거리는가. 하루 중에 오갔던 온갖 일상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정녕 영양가 없는 잡념이다. 명상을 수도승처럼 도(道)를 닦는 수준으로 여기고 행위를 이어가고 있어선가. 수도승은 차치하고 중생의 도(道)는 어떻게 닦아야 하고, 나의 '도(道)'는 어느 수준까지 와 있는지 묻는다. 돌아보니 명상의 뜻도 제대로 모르고 혼자서 마음을 복닥거린 격이다.

'명상'이란 단어를 톺아본다. 명상의 사전적 의미는 '눈을 감고 차분한 마음으로 깊이 생각함'이다. 명상은 무념무상이라 아니라 어떤 한 가지를 깊이 생각하는 행위이다.

요가를 배운 지 십오 년이 넘는다. 요가를 배우기 시작한 건 책상다리, 흔히 말하는 양반다리 자세가 어려워 요가를 시작하게 되었다. 두 아이를 출산하며 얻은 허리 통증으로 큰 병원, 작은 병원을 오갔으나 호전이 없었다. 허리 통증에 걷기가 좋다고 하여 한동안 산수와 공기가 좋다는 둘레길과 올레길을 두루 섭렵하였다. 틈이 날 때마다 걷고자 동네 구석구석까지 돌아다녔다. 그러나 걷기를 할 때만 통증이 덜할 뿐, 앉은 자세는 여전히 고통스러웠다. 그나마 요즘 식당은 의자가 있어서 다행이다. 예전에는 바닥에 오래 앉아 식사하는 자세가 고역이었다. 지인이 요가가 자세 교정에 좋다고 하여 시작하게 된 것이다.

요가를 시작하기 전에 명상에 들어간다. 등을 꼿꼿이 세워 두 눈을 감고 가부좌를 튼다. 나의 명상은 오늘도 온갖 신변잡사로 헤매다 시간을 보낸다. 이어 발가락 말초신경에서 머리까지 온몸의 세포를 일깨운다. 동작마다 들숨과 날숨을 번갈아 코로 깊이 들이마셨다가 길게 내쉰다. 그렇게 요가를 한 시간여 하고 나면, 몸은 약 2도 이상 체온이 오른다. 버거운 동작을 할 때는 진땀이 흐르기도 하지만, 집으로 돌아갈 때는 기분 좋은 피로감으로 몸이 가벼워진다. 무엇보다 요가로 오십견도 완화되고 허리에 통증도 좋아진 걸 보면, 역시 몸을 제대로 움직여 바른 자세를 잡는 것이 우선이다.

고된 하루로 시체처럼 침대에 눕고 싶을 정도로 힘겨운 날도 있다. 그럴 때는 모든 것이 귀찮아 오늘 요가를 갈지 말지 갈등 속이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현관문을 나서면 기분이 좋아진다. 선생은 오늘도 '명상하는 이 순간만큼은 자기 몸을 제대로 바라보라.'라고 말한다. 그런데 내 머릿속은 바라보라는 몸은커녕, 어제와 다름없이 신변잡사를 불러 놓고 있다. 이야기를 엮는 작가라서 그런가. 가끔은 번득이는 영감을 얻거나, 풀리지 않던 문제가 해결되니 잡념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은희 수필가
이은희 수필가

명상도 습관인 듯싶다. 조용한 숲이나 산사에 들면 두 눈을 감고 명상에 들고 싶다. 물고기가 들려주는 청아한 풍경 소리도 좋고, 피부를 스치는 바람결도 더없이 좋다. 이제는 분에 넘치는 참선이나 수도(修道)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머릿속에서 무언가를 없애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명상의 속성처럼 한 가지 소재로 깊은 사유에 들리라. 아니면 그 어중간한 경계에서 묵상, 성찰, 사색도 좋으리라. 두 눈을 감고 고요히 앉아 심호흡을 깊게 하면, 심신의 건강에도 좋다. 가끔은 영감을 얻을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글쓰기 선생이 어디에 있으랴.

키워드

#아침뜨락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