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병연 수필가

숲을 떠나 봐야 숲이 보이듯이, 밖에서 봐야 우리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상대방은 나의 거울,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떠나는가 보다. 청주공항에서 제주도를 지나 남쪽으로 한 시간을 더 가면 지난 해 아시안 올림픽이 열렸던 항주(杭州)이다. 그곳에서 지냈던 5년 세월이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나의 삶을 재조명할 기회가 되었다.

오늘은 '얼굴'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중국의 도시는 규모면에서 엄청나고 휘황찬란하다. 그러나 뒷골목에 사는 서민들은 열악(劣惡)한 환경으로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얼굴에서는 오히려 한없는 평화와 자유과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필자와 인연이 있었던 두 사람을 소개하겠다.

하나는 할아버지 청소부이야기다. 한 번 굳어버린 습관은 여간해서 고치기 어려운 것 같다. 이곳에서 놀란 것이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습관이다. 필자가 근무했던 고등학교도 3천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밤새 창문 아래로 쓰레기를 마구 버린다. 아침만 되면 기숙사 아래 화단은 쓰레기에 덮여서 화초가 아예 보이질 않는다. 정말 '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다.

그런데 그 엄청난 쓰레기도 오전 10시쯤 되면 누군가 어느 새 말끔히 치웠다. 차츰 알고 보니 바로 '청소부'이었다. 마치 우리네 고향마을의 이웃집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같았다. 산더미 같을 쓰레기와 새벽 5시부터 하루 종일 씨름하는 것이 그의 일과다. 필자가 '니하!'라며 먼저 인사를 건네면 그도 작업을 하다말고 웃으며 손을 흔든다.

'워먼 펑요바'(우리 친구하자)라고 하니, 엄청 좋아 했다. 우리는 금새 가까운 친구가 됐다. "그렇게 힘들 일을 하는 봉급이 얼마나 되는가?"라고 물으니, "처음엔 천 원을 받았는데 매년 50원씩 올라서 지금은 1500원 정도 된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니 월급이 게 고작 근로자 하루 일당 남짓한 25만원이라니! 그럼에도 자기는 매달 500원만 쓰고 1천원은 저금하여 지금은 꽤 많은 돈을 모았다고 자랑한다. 비록 주름살은 많지만 그의 얼굴에는 항상 '미소와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필자는 처음 6개월은 자취를 한 적이 있었다. 교문 밖에는 새벽부터 간이음식점이 두 곳이 있는데, 아줌마의 첫인상이 어찌나 좋은지, 그것 때문에 그 아줌마 집이 단골이 되었다. 한 끼에 3원(한화 500원정도)하는 아침식사가 미소 짓는 아줌마가 반찬이 되어 하루일과가 행복으로 충전되었다. 그런데 수개월이 지난 후에야 아줌마 우측 다리가 소아마비라서 목발을 짚고 다니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얼마 후에야 남편도 왼쪽 다리가 잘린 불구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그들은 세상에 누구보다 행복한 부부로 보였다.

5시 50분 기상(起床)나팔과 함께 일어나 캠퍼스를 순회하며 청소부 할아버지와 인사하고, 간이음식점 부부를 만나서 식사하며 하루 일상이 시작하게 되었다. 문득 '얼굴'의 의미가 생각이 났다. '얼'이란 그 사람의 영혼(魂; 마음)이며, '굴'(窟)이란 마음의 에너지가 들락날락하는 통로(通路)라고 한다. 신체 가운데 근육이 가장 발달한 부위가 얼굴인데, 여기에는 80개의 근육이 있고, 7천가지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단다.

과연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란 얼굴은 어디서 오는가? 그들은 우선 생각이 복잡하질 않고 단순하였다. 청소부는 눈만 뜨면 쓰레기를 치우는 것만 생각하고, 간이음식점부부는 시장 봐서 저녁에 음식을 장만하여 새벽 2시에 집을 나와 음식을 파는 것만 생각한다.

김병연 수필가
김병연 수필가

'충(忠)과 환(患)'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가운데 중(中) 하나(一)와 마음(心)이 합치면 '진실한' 충(忠)이 되고, 가운데 중(中) 둘(二)과 마음(心)이 합하면 '근심' 환(患)이 된다. 천자문에 '마음이 복잡하면 정신이 피곤하다'는 심동신피(心動神疲)란 구절도 일맥상통한다.

단순한 삶을 통하여, 행복한 얼굴을 만들어 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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