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차가운 바람이 두볼에 스치는 겨울에도 땅속에는 따스한 봄을 준비하느라 눈코뜰새없이 분주했으리라. 이제 우수경칩을 지나니 제법 봄을 알리는 꽃소식이 남쪽에서부터 우리 곁에 한걸음 한걸음 다가오고 있다. 아, 이제 봄인가 보다. 사무실의 햇볕도 사뭇 전과 다르다. 봄바람도 맞으며 수다(?)도 떨겸 사무실을 나와 걸어서 자주 가는 커피숍에 들렸다. 그런데 그곳에서 우연히 지인을 만나 차 한잔을 나누며 서로의 삶의 여정에 대하여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데 재미있는 것은 누가 약속이나 한 듯이 빨리 가는 세월에 대해 아쉬움이 역력히 서려있음은 감출 수가 없었다. 나이가 들면 당연한 것이지만 막상 그 처지가 되고 보니 무엇보다 이제는 현재에 충실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새삼 공감하고는 서로 너털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런데 지인은 전과 달리 조금 머뭇거리는 표정을 짓더니 지난 며칠전에 안식구랑 막내딸이랑 함께 상견례를 하고 왔어요, 막내딸? 아, 그래요? 정말 잘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라고 정중히 말씀을 드리니 지인분께서도 이렇게 축하해 주시니 제가 더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화답을 했다. 얼마후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눈후 그 자리를 뜬적이 있다.

사실 상견례, 우리는 일상적으로 결혼을 앞둔 성인남녀가 사랑의 결정체를 맺기 위해 양가의 부모님을 뵙게되는 예식 절차의 하나라고 생각을 한다. 돌이켜보면 나도 두 번씩이나 상견례를 치룬 적이 있다. 한번은 아들자식이고, 또 한 번은 딸 자식 때문이다. 그런데 왠지 상견례 날짜를 잡아 놓으면 결혼 당사자는 물론 양가의 부모님들도 가슴이 설레기는 마찬가지다. 그런가하면 또 한편으로는 걱정도 태산이다. 도대체 처음만난 자리에서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하나, 의복은 어떻게 차려 입어야 하나, 음식은 또 어떻게, 장소는 어디에서 등등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래도 지금이야 많이 개방되었다고는 하나 인륜지 대사란 점에서는 지금도 양가 부모님들이 서로 조심스럽기는 매 일반일 것이다.

그런데 상견례가 꼭 결혼을 앞둔 혼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선학교에 근무할때를 뒤돌아보면 학교에서도 상견례가 이루어 진다. 물론 타직장도 그러겠지만 학교는 새 학기초가 되면 초임선생님이나 타학교에서 근무하시다 본교로 전근오신 선생님과 기존의 선생님,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에도 상견례가 있기 마련이다. 먼저 선생님과는 교직원회에서 새로 오신 선생님의 부임인사로 기존의 선생님과 상견례가 이루어지고 그후 입학식날이 되면 선생님과 학생들의 상견례가 이루어진다. 학생들은 학생대로, 선생님은 선생님 대로 설레기는 다 같다. 학생들은 어느 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인가, 과목별 선생님은? 그런가 하면 선생님은 금년에 우리반 학생들은 어떤 모습의 학생들인가? 하며 마음속으로 궁금해 하신다. 설레임속에서 모든 학사일정을 마친후 이어 학생들간에도 신입생과 재학생들과 서로 상견례가 이루어지곤 한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그렇다. 설레임과 걱정스러움이 함께 하는 상견례는 분명 삶의 여정에서 의미있는 시간이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혼례예식의 상견례, 학교에서 스승과 제자의 인연으로 맺어지는 고운인연의 상견례, 학생들간에 선후배를 넘어 동문으로서 자리잡는 첫 만남의 상견레, 각종 단체에서의 상견례, 직장에서의 상견례, 이모든 것은 새로움의 시작이요, 다짐의 시작이요, 관계의 시작이요, 또다른 삶의 여정을 여는 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상견례는 축복의 씨앗이다. 나또한 지난 30여년의 교단에서, 두남매의 결혼에서, 다양한 만남에서의 상견례를 통하여 참으로 아름다운 인연을 많이 갖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어쩌면 상견례는 어떤 형식의 절차를 넘어 보다 행복한 삶을 위해 성숙해가는 한 과정의 일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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