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가까운 지인의 딸 결혼식이 있었다. 가는 길에 오래 만나지 못한 누이를 찾아보기로 했다. 일찍 출발한다. 하루에 두 가지 일을 하려면 그래야지. 핸드폰 내비에 의지해 느릿느릿 간다. 길눈 어둡고 운전 시원찮으니 다른 방법이 없다. 출발한지 두 시간 조금 넘어 누이 집에 도착했다.

긴 투병생활 동안 현대의학보다 신앙에 의지해 살아온 누이다. 올해로 일흔셋, 그 어느 때보다 긴 수명을 누리며 사는 세대가 우리 아닐까? 머리털이 많이 빠져 앙상하다. 몸도 병에 시달려 약할 게다. 집안엔 고물이 가득이다. 아들들과 주변 사람들이 "하지 말라"고 권해도 의지를 꺾을 수 없단다. 꺾이지 않는 마음이 중요한 건 맞지만 좁은 공간을 고물보단 사람이 써야지.

누이를 이해한다. 앉아 놀면 뭐하나? 돈 들어갈 데는 끝이 없고 특별한 재주 없으니 간단한 일이라도 해서 조금이라도 보태야지. 그나마 하지 않으면 삶의 의지도 존재감도 더 약해지는 걸. 몇 번 하다 보니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크든 작든 모두가 돈이니 보이는 대로 모아오고 여기저기 쌓아둔다.

엄마가 주체도 못할 높이와 무게의 리어카를 끈다고 아들은 허탈해 하며 털어 놓는다. 언제 세월이 저렇게 흘러 돌아가신 어머니 나이를 훌쩍 넘긴 것일까? 누이 처지를 생각다 보니 얼마 전, 누군가가 카톡 방에 찍어 올려준 한쪽 머리가 많이 빠져 허옇게 살이 보이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내 자신은 노년에 접어들었다고 생각지 않았는데, 동기들이 모두 현역에서 물러나고 어디가도 나이 든 축에 끼니 대처하기가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

결혼식장에 들렀다.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신랑이 그렇게 어려보일 수가 없다. 저들이 주역으로 들어오고 내 세대는 들러리로 물러나야 하는 것인가? 내 또래 많은 이들이 동의하지 않을 듯하다. 지식이, 체력이, 인간관계가, 여유가, 무엇이 부족해서 밀려나야 하는가? 한사코 나이가 든 것을 부인하며 젊다고 우기고 싶은 게다. 머리 염색하고 피부 팽팽히 당기고 젊은이들 옷을 입고 근육을 자랑하며 아직은 젊다고 시위를 한다.

결혼식장 주차를 관리하던 분이 내 차 앞바퀴를 보더니 마모가 심해 너무 위험하니 곧 갈아야 한단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한 마디씩 조언을 한다. 어쩌면 그렇게 다들 박식한지…, 어떤 분은 생명과 관련된 것이니 자신은 돈 아끼지 않고 바퀴를 자주 교체해 준다고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자꾸만 불안해진다. 그분들과 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내 자신이 초라하고 민망하다.

조심조심 청주로 돌아오는 내내 초조하다. 꼭 어느 지점에서 바퀴가 주저앉아 차들이 길게 정체되고 보험회사 전화번호를 몰라 우왕좌왕하는 내 모습이 거듭 그려진다. 간신히 차량정비소까지 갔다. 차에 맞는 바퀴가 없으니 주말 보내고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오라고 한다. 그래도 되겠냐고 했더니 바퀴를 보고는 별 문제 없단다. 긴장이 풀린다.

집으로 오는 길이 하나도 걱정되지 않는다. 인터넷에 "승용차 타이어 수명"을 입력하니 많은 지식이 우수수 쏟아진다. 명확한 기준은 없나 보다. 대략 오만 킬로를 운행하거나 4년 정도 되면 바꾸라는 내용이다. 선수를 바꾸며 달리는 계주처럼 어느 순간 우리도 교체되리라. 원하지 않는다고 혼자만 남을 수는 없을 게다.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남고 싶은 의도는 무엇일까? 자신이 잊혀 가는 게 처량하고 당황스러워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게다. 다음 주 초에는 염려해주고 관심 기울여준 이들을 기억하며 앞바퀴를 교체하러 갈 것이다. 물러난 바퀴도 뭔가 할 일이 있지 않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욕심 내려놓고 단출하게 살아야지. 무언가 미리 몰아내기보다 가능하면 그 끝까지 가보고도 싶다. 차바퀴는 생명이 걸린 것이라는데…. 시간이 곧 생명 아닌가. 하루라도 더 버텨볼까. 대체 뭘 믿고…? 겁이 난다, 내 목숨이 두 개는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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