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영호 / 충북문인협회장
내가 단골로 가는 그 방죽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비오리 한 쌍이 산다.

마치 물방울이 풀잎에 구르는 듯 한 은방울 소리야말로 무엇으로도 흉내낼 수 없는 소리다. 작지만 울음소리며 수영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비오리는 여러 무리와 어울리는 법이 없다. 지난해 새끼를 5마리를 부화시켜 키웠으면서도 여전이 그 방죽에는 한 쌍이 있을 뿐이다. 어느 곳이든 비오리가 한쌍 이상 사는 곳은 없다. 비오리는 또 한번 맺은 짝과 평생을 산다. 겨우내 듣지 못했던 비오리 울음소리를 생각하면 금요일 밤이 너무 긴 듯하다.

금요일 저녁엔 마음먼저 낚시터에 가 있다. 확 트인 넓은 수면을 생각하면 10평 남짓한 옹색한 사무실에서 일주일을 보낸 마음이 시원해지고 출렁이는 물결은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는 것이다. 파도는 멀리서 부터 밀려온다. 그리움 같다. 그리움은 밀려가는 법이 없듯이 언제나 내게로 다가오는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곧 기다림이다. 그리움이 간절하여 기다림이 된다. 그립다는 것은 순수한 마음이고 순수함은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기다림의 순간을 많이 접한다. 만남의 기다림, 기차나 버스의 기다림, 사진작가의 결정적 찬스 포착을 위한 기다림, 강태공의 기다림. 낚시란 기다림이다. 대어를 낚기 위해 흐르는 시간을 친구삼아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것이다.

어릴 적, 일요일이면 선친은 나를 종종 방죽으로 데리고 갔다. 선친은 낚시터에서 강태공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었다. 은나라 말기 주왕은 달기의 주색에 빠져 나라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때 주나라를 세우게 되는 서백 창은 재야에 묻혀 사는 인재를 찾게 되는데 그게 바로 강태공이었고, 서백 창은 강태공의 도움을 받아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워 주나라 시조가 되었으며 강태공은 제후가 되었다. 강태공이 한가로이 낚시를 한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렸다고 한다. 세월을 낚는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꿈을 위하여 참고 인내하라는 선친의 말씀이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기를 낚는 법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기다리는 법과 기다림을 즐기는 법, 그리고 조용히 생각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법을 가르치신 것이다.

그렇다. 나도 낚시터를 찾는 일이 비단 고기를 잡기 위함이 아니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청아한 새소리를 듣는다. 조용한 침묵의 호수는 나를 더 외롭게 하고 깊은 명상에 젖게도 한다.

오늘은 금요일. 어서 날이 밝았으면 좋겠다. 짝짓기 철을 맞은 비오리의 울음소리며 한창 물올라 흥청 늘어진 수양버드나무와 반짝이는 비단 물결 속을 유영하는 붕어 얼굴이 보고 싶다. 물론 그들을 만나면 쌓인 원고청탁도 해결될 줄 믿는다. 일상을 탈출한 도피일수도 있겠지만 그리운 것들과 기다리는 것들이 있는 곳은 분명 나를 기쁘게 할 것이다.

반영호 / 충북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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