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택 / 진천군 노인복지관장
"남을 부축해 줄 수 있는 여력만 있어도 행복한거여!"

오후 6시, 오월의 하루해가 또 저물어 가고 있다. 오늘도 퇴궐을 준비하는 어르신네들의 모습이 분주하다.

발이 불편한 노인에게 신발을 신겨주는 신발담당, 허리 굽은 노인에게 지팡이를 챙겨주는 지팡이담당, 귀가 어두운 노인의 의사소통을 해결해 주는 통역담당, 제대로 걷지 못하는 노인에게 자신의 어깨를 내주는 부축담당, 집이 먼 노인을 자신의 차로 보셔다 주는 귀가담당….

퇴궐시간만 되면 각 분야의 담당 도우미들은 이렇게 조직적이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그 뿐만이 아니다.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던 분이 어쩌다 입궐시간이 늦어지거나 하루라도 거르는 날이면 전화를 걸어 근황을 체크하는 안부담당도 있다.

진천군노인복지관은 우리지역 어른들 사회에서 '생거진천궁(宮)'으로 통한다. 그래서 어르신들은 회관에 들고 나실 때를 '입궐' , '퇴궐'이라고 한다.

그런데 생거진천궁의 도우미들은 젊은이들이 아니다. 어느 봉사단체로부터 파견된 특별한 사람들도 아니다. 노인회장도 도우미요, 감사도 도우미요, 사무국장도, 노인대학장도 도우미다. 과거 반 평생을 공직에 몸 담아 계셨던 분들이기도 하다. 이렇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노인회관내의 모든 회원들 자체가 도우미다.

그리고 궁내의 최고 상전은 노인회장이 아니다. 연세불문하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면 누구나 상전이요 임금처럼 수발을 받는다. 이 자발적 도우미활동은 단기적인 것이 아니다. 비가 오나 눈이오나 1년 365일 한결같다. 이렇게 인생 황혼기를 맞이한 생거진천궁의 어르신들은 서로에게 손과 발이 되고 힘이 되어준다. 이 멋지고 아름다운 동행을 바라 볼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공직에서 퇴직하고 노인복지관에 근무한 지 3개월 째 접어들었다. 처음에는 나의 업무가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 운영과 불편함이 없도록 좀 도와드리는 시혜적인 것으로만 알았다.

그러나 "괜찮아, 힘들지 않아, 남을 부축해 줄 수 있는 여력만 있어도 행복한 거 아녀"" 하고 활짝 웃으며 백발의 노익장을 과시하시는 도우미 어르신들을 접할 때마다 오히려 나 자신이 많은 가르침과 도움을 받는 수혜자 입장이 된 느낌이다. 누가 노년은 슬픈 것이라고 했으며 누가 고령화 사회를 두렵다고 했는가 이렇게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아름다운 동행이 있고 노마지지(老馬之智)의 고귀한 지혜가 있는데 말이다.

노인복지는 경로우대증의 두께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가정의 달에만 차려내는 경로잔치 상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노인들이 던져주는 아름다운 메시지를 사회적 에너지로 승화시켜 건강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데 있지 않나 싶다. 오늘도 진천군노인복지관엔 생거진천(生居鎭川)의 전설을 현실로 엮어내는 아름다운 동행의 주인공들이 머물고 있다.

정재택 / 진천군 노인복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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