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의 계절이 멀어져가니 아쉬움이 많다. 중년에 들어선 후 부터 마음이 바쁘기만 했다. 올해는 큰 비나 태풍이 없었기에 농사가 풍년이었고, 지금은 집집마다 가을걷이와 겨우살이 김장도 끝나서 모두들 마음의 여유가 생겼을 것 같다.

사과와 배를 사각사각 소리 나게 베어 먹으면서, 영근 과일이 터지는 투명한 소리에 마음의 주름을 살짝 펴고 그리운 벗을 생각해 보자. 한해를 보내는 12월, 그동안 미안했거나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감사함의 메시지나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지. 꼭 무엇을 한다기보다 빈 하루를 사색하며 보내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 한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들판을 달리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뒤돌아본다고 하는데,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는지 살피기 위해서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일상생활을 뒤돌아보자. 정신없이 산다는 말은 영혼 없이 산다는 것으로, 세상이 각박하지만 영혼의 끈을 놓치지 말자.

오실 오실 추워지는 요즘 길가 모퉁이 포장마차에서 보글보글 끓여내는 가락국수 아줌마처럼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며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한다. 요즘 같이 스산할 때, 마음속에 눌러 온 갈망의 실타래를 풀어내기 위해 우리 모두 뜨거운 물이 되면 어떨까. 뜨거운 물이 되어 마음을 열면, 진정한 벗을 얻는다니 낙엽 진 거리 걸으면서 한번쯤 뒤돌아보고, 따스한 영혼을 지니고 살자.

계절이 송년을 향해 달리고 있다. 오는 백발이야 작대기로 후려친다지만, 살아가며 느끼는 갑갑함은 무엇으로 막을까. 벌레 소리 애잔한 초겨울 밤 포장마차에서 따끈한 어묵 국물에 마음을 열 수 있는 친구와 소주 한잔하면서 기쁨을 나누자. 우리 모두 고운 기억 닦아서 달빛으로 광을 내고, 낙엽 긁어 태우며 향기를 맡아 보자. 소박한 풀꽃과 순수한 낙엽 타는 연기(煙氣)의 향(香)은 별빛과 함께 우리의 영혼을 빛낼 것이다.

혼자 빛나는 별이 없듯이, 서로가 함께 기쁨을 나누면 더욱 빛날 것이다. '과유불급' 즉 지나침은 부족함보다 못하다고 하는데, 너와 나 모두들 알맞게 누리자.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더 편해지려고 애쓰고 발버둥치는 동안 정작 우리가 얻은 것, 챙긴 것도 없이 귀한 벗만 멀어져간다. 귀하고 소중한 친구 잃기 전에 귀인(貴人)으로 만들어 두자.

모두들 분주하게 세상을 살고 있다. 이제는 여유를 누리며 살고, 살며시 영혼의 빛깔에 다가서자. 농(濃)익은 영혼의 빛깔은 코스모스보다 곱고, 국화보다 향기로우며, 홍시보다 달콤하다. 초겨울을 지나며 누군가의 영혼 빛깔을 따스하게 쓰다듬을 수 있으면 좋겠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지인(知人)과 마주앉아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된장 뚝배기와 밥 한 숟가락에 정겨움을 담자. 한해를 보내며 우리 모두 따뜻한 세상을 만들고, 영혼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보자.

/류시호 음성 대소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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