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원 건국대 언어교육원 교수

제 무덤 앞에서 울지 마세요
그곳에 저는 없으니까요
저는 결코 잠들지 않습니다
저는 다시 천개의 바람, 천개의 숨결로 당신께 다가갈 겁니다

테러로 목숨을 잃은 한 소녀가 남겼던 편지 중 일부이다. 911 사태 1주기에 유족을 그리는 자리에서 낭독되기도 했다고 한다. 거대한 재난에 희생된 이들을 가슴에 품고 울부짖는 아이티 난민들에게 그들은 바람과 숨결이 되어 당신들 곁에 머물 거에요 라는 조용한 위로를 우선 보내고 싶다. 또한 무엇보다도 우리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넉넉한 관심과 원조가 바람과 숨결처럼 그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아이티는 1804년 노예혁명으로 독립을 쟁취한 중남미 최초의 독립국이다. 한때는 카리브 해의 부국(富國)으로 꼽히기도 했던 아이티는 독립에 따른 부당한 부채와 미국의 내정간섭으로 경제적 정치적 혼란에 잇단 자연 재해까지 겪으면서 서반구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밥벌이가 될 만한 자원은 해외 자산으로 넘어가고 일터를 잃은 많은 농민들은 도시의 비참한 슬럼가로 밀려나 버렸다. 한마디로 아이티는 열강의 침략과 간섭이 가져다 준 빈곤의 유산을 고스란히 떠안고 사는 셈이다.

"1915년 미국이 아이티를 침공해 점령한 이후부터 절대적 빈곤 상황에서 탈출하려는 아이티 민중들의 노력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의해 폭력적이고 계획적으로 봉쇄됐다"며 "국제사회는 아이티가 겪고 있는 고통만큼의 책임을 져야 한다" 고 영국의 '가디언' 13일자 칼럼이 전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아이티의 재앙은 국제사회에 의한 인재(人災)다. 그러니 국제사회 구성원인 우리가 어찌 그 슬픔을 외면할 수 있겠는가.

배신과 무관심에 죽을 듯 괴로워하면서도 기다리게 되는 그 마법 같은 위안과 희망, 그거야말로 살아있는 사람들의 특권이다. 그래서 가난과 무관심의 비통함 속에서도 그들 이십만은 희망을 갖고 살아 있었어야 했다. 보낼 준비도 안 된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야 했던 죽은 자들은 그래서 억울하다. 그들은 한 조각의 희망도 실현될 시간을 결국 허락받지 못했다. 더구나 남아서 힘겹게 생존과 싸우는 자들은 죽은 자들을 애통해 할 여유도 없다.

누구는 사랑이 고파 찾아오는 게 추위라고 했다. 시린 창에 기대어 더운 가슴 내어 줄 누군가를 간절히 바라고픈 겨울이다. 우리가 누구인가. 눈물을 참지 못하는 울보들이 아닌가. 주변의 재난과 그로 인한 슬픈 사연, 그 슬픔을 껴안는 뭉클한 인연들을 전해 들으며 그리도 슬퍼하는 우리는 다 온정이 넘치는 착한 울보들이다. 재앙과 환난이 닥칠 때마다 주변을 살피고 마음을 나누던 우리 울보들의 가슴이 이제 또 달구어질 때이다. 사랑이 고픈 그들에 대한 우리의 오랫동안의 무정함과 무관심을 미안하게 여기면서 동시에 그들의 재건을 열렬히 기원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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