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원 건국대 언어교육원 교수

요즘 대세인 '하이브리드'는 사전적 의미로 '잡종'이나 '혼혈'이다. '퓨젼,' '크로스 오버' 등 십년 이상 유행해 온 사회, 문화 전반의 대세이던 용어와 실상 맥락이 닮았다.

이 모두 혼합이나 조화를 꾀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사실 그 성격 면에서 서로 다른 두 가지 이상의 기능과 성격이 합쳐 조화를 이룬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느끼는 이 '합체'의 매력은 상이한 두 가지의 매력을 잘 소화한다면 참으로 감동이다.

동서양의 음식을 한 접시에 결합해 낸 퓨젼 요리며, 클래식이나 재즈처럼 약간은 부담스러울 수 있는 곡에 락이나 댄스곡을 결합한 듣기 편한 크로스 오버 음악, 게다가 비싼 기름과 엄청난 오염의 짐을 덜 하이브리드카까지 우리에게 합체의 즐거움과 편리함의 예는 무궁무진하다

인종과 문화의 혼합도 가족의, 혼은 민족의 하이브리드 화 현상이 아닐까. 우리나라도 이미 외국인 100만 시대가 열리면서 2009년 조사 결과 전체 주민등록 인구 대비 2.2%를 외국인 거주자들이 차지했다.

미국은 일찍이 '멜팅 팟(Melting Pot)'이라는 용어로 이민자들을 설명했다. 용광로라는 뜻의 '멜팅 팟'은 '문화적 동화'나 '문화적응'과 유사한 개념이다.

'멜팅 팟' 비유는 문화의 혼합 및 다른 인종 간 결혼 두 가지 의미를 담고는 있지만 '미국인 정체성'을 백인 이민자 그룹들에 동화되고 그들과 결혼하는 것으로 보는 '멜팅 팟' 이론은 사실 미국인이 된다는 것을 백인처럼되는 것' 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조화라기 보다는 주류를 따르는 비주류의 동화였다고나 할까.

그러나 근년에는 용광로 이론이 아니라 샐러드 볼 이론이 지배적이다. 이것은 미국에 온 모든 민족을 개성 없는 비주류로 보지 않고 각각의 독특한 민족적 특성을 한 그릇에 담아 그 풍미를 가미한 긍정적 요소로 이해하겠다는 뜻이다.

소통의 결여로 약간의 서먹함이 있겠으나 문화적 개성을 고스란히 품고 우리의 가족이 되어 준 우리나라 주재 외국인들 역시 샐러드 볼 속의 야채와 과일들처럼 맛깔나게 우리와 섞이길 기대해 본다. 적절한 드레싱은 물론 정책적 몫이다.

난 좀 심심한 김치볶음밥보다 그 위에 모짜렐라 치즈를 얹어 데워 낸 퓨젼 볶음밥이 좋다. 그저 치즈 조금 얹었는데 정말 맛있다. 또한 육중한 교회음악에 경쾌한 보사노바를 잘 섞은 보사바로크 음악을 즐기고 신개발 하이브리드카에 열광하기도 한다.

우리 세대 국딩들의 로망이었던 마징가젯트나 로봇태권브이도 인간과 로봇의 하이브리드였다. 그들이 합체하면 무적이 아니었던가!

다문화를 즐기고 껴안는 하이브리드 사회도 맛깔나고 파워풀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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