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완 농협 청주교육원 교수

가을의 단풍이 사람과 자연을 만나게 한다. 단풍은 울긋불긋 차려입은 색깔로 아름다움을 뽐낸다. 단풍의 형형색색 오묘함에 빠져 발길과 눈길이 바쁘다. 단풍이 '사람단풍'을 만들면서 오묘한 풍경을 연출한다.

단풍은 오색찬란한 빛깔로 눈을 즐겁게 해준다. 낭만과 순수한 동심의 마음이 시인을 꿈꾸게 한다. 세상살이의 힘듦을 잠시라도 내려놓을 수 있는 쉼터가 된다. 내면의 소리를 듣고 만날 수 있는 성숙의 공간이다. "잊을 수 없는 추억 하나도 정신적인 성숙의 실상이다." 니시베 스스무 작가 말이다.

단풍이 나에게 묻는다. 다른 이에게 즐거움을 주며 살고 있는가. 누군가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꿈을 열정으로 이끌고 있는가. 삶의 무게감으로 지쳐있는 사람이 눈치 볼 것 없이 아무 때나 기댈 수 있는 사람인가. 상처받은 이의 영혼을 감싸주고 보듬어주는 덕(德)을 쌓고 있는가. 단풍의 신비로움은 알록달록한 색상들의 조화이다. 단풍이 단색만으로 물들어 있다면 황홀감은 덜하고 금방 싫증을 느끼게 될 것이 뻔하다. 나무마다 피우는 독특한 색깔의 존재감이 위대하다. 떡갈나무가 단풍나무의 오색영롱한 변신을 부러워하며 주눅 들지도 않는다.

단풍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엿들었다.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는 곳,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곳, 권력을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의 존귀감이 동등한 곳, 잘생긴 사람과 못생긴 사람이 부끄럼 없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곳, 이것이 세상이다. 세상은 보면 볼수록,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오묘함이 듬뿍 담긴 곳이다.

단풍에는 예사롭지 않은 비범함이 묻어 있다. 여름의 폭염과 비와 바람을 견뎌냈다. 단풍이 들기까지 많은 걸림돌을 잘 뛰어 넘었다. 단풍의 아름다움에는 자연의 산고를 이겨낸 승리자의 웃음이 담겨있다.

단풍이 나에게 말한다. 삶이란 비단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먼지가 나는 시골길을 걸어야 하고, 웅덩이에 빠지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며, 가던 길에 바위덩어리가 떨어져 뒤돌아갈 때도 있다. 사람이 단풍보다 아름다운 것은 삶의 우여곡절을 헤쳐 나온 '감동의 빛' 덕분이다.

단풍은 낙엽이 되어 내려놓는 이치를 실행한다. 단풍놀이를 즐겼던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무관심도 감내해야 한다. 단풍이 누린 호사를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은 소멸이 아니라는데 있다. 단풍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겨울을 준비할 때임을 안다. 단풍이 낙엽으로의 쇠락을 받아들이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순환과정임에 대한 믿음이다.

단풍이 사람들에게 나지막이 속삭인다. 한 때의 권력과 인기만을 되새김질하는 삶은 비참하다. 모든 일의 끝은 또 다른 일의 시작을 의미한다. '끝'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다. 단풍이 '때'를 제대로 알며 살라고 넌지시 알려준다.

올 가을에 단풍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단풍의 메시지가 사람들 마음으로 이어지는 진풍경을 보고 싶다.

단풍이 나에게 주문한다.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며 살라고.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