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뜨락-정종병

새 집으로 이사간다. 보름만 지나면 2011년 시간의 집으로 말이다. 이사짐을 꾸린다. 포장이사가 아닌 직접 내가 손때 묻은 것 하나하나를 정리한다. 가지고 갈 것과 버릴 것을 챙긴다. 정작 가지고 갈 것은 너무나 적다. 가족, 기쁨, 만족, 이해, 사랑, 배려, 격려, 용기, 인정… 조심스럽게 포장한다. 왠만한 것은 다 버려야 하겠다고 생각하니 가지고 갈 짐은 아주 적다.

정진규 시인의 '原石' 과 그 해설자 박찬일 시인의 보석같은 교훈이 갑자기 생각난다.

"사람들은 슬픔과 외로움과 아픔과 어두움 같은 것들을 자신의 쓰레기라 생각한다. 버려야 할 것들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몇 해 전 집을 옮길 때만 해도 그들의 짐짝이 제일 많았다. 그대로 아주 조심스레 소중스레 데리고 와선 제자리에 앉혔다. 해묵어 세월 흐르면 반짝이는 별이 되는 보석이 되는 原石들이 바로 그들임을 어이하여 모르실까 나는 그것을 믿고 있다. 기다리고 있다. 나는 슬픔 富者 외로움 富者 아픔의 어두움의 富者 살림이 넉넉하다."

슬픔 괴로움 아픔 어두움은 쓰레기 목록들이 아니라, 재산 목록들이다.

"나는 슬픔 富者 외로움 富者 아픔의 어두움의 富者"라고 하고 있다.

슬픔 외로움 아픔 어두움이 많다고 한 것이다.

슬픔 외로움 아픔 어두움이 많은 것은 낭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슬픔 외로움 아픔 어두움을 낭비하지 않고, 차곡차곡 은행에 쌓아놓았기 때문이다. 슬픔 외로움 아픔 어두움은 언제든지 빼내 쓸 수 있는 현금과 같다.

시인에게는 특히 그렇다. 지난 1년을 곰곰히 생각하면 나를 키운 것은 내 등의 짐이였다. 그것 때문에 때로는 불평하고 남과 비교하면서 나를 자학했고 외면하고 싶어 했지만 나를 이끄어준 것이 바로 내 등의 짐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다. 먼저 짐진 스승이 바로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하고 가르쳐 준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사랑을 몰랐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로 남의 고통을 느꼈고 이를 통해 사랑과 용서도 알았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미숙하게 살고 있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이 내 삶의 무게가 되어 그것을 감당하게 하였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겸손함과 소박함에 대한 기쁨을 몰랐을 것입니다. 내 등의 짐은 바로 세상이 나에게 준 가장 값진 선물입니다. 내 등의 짐 참 좋은 말입니다. 우리들은 등에 놓인 짐에 대해 늘 불평만 합니다.

그 짐이 자신을 단련시키고 강하게 만들며 더 꿈꾸게 하는 보물임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역경은 꼭 우리가 극복할 수있을 만큼만 찾아옵니다.

지금 그늘 속에서 힘겨워 하지만 그건 분명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

힘을 내십시오. 등에 놓인 짐을 달리보면 그건 바로 희망입니다."

보석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忍苦의 날들 이겨내신 모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너무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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