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뜨락]박정원 건국대 언어교육원 교수

며칠 전 제자 한 녀석이 취업 인터뷰에서 트랜드 이슈와 관련된 질문을 받고 당황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취업공부하느라 잠시 세상이 달려가는 속도에서 자기가 한참은 밀려있더라는 말이었다.

사회생활을 오래한 어른도 아니고 대학생 입에서 '세상 참 빨라요'라는 말이 나올진대 구닥다리 아날로그 세대인 우리들은 이 빠른 세상을 어찌 쫓아간단 말인가.

날고 뛰는 놈들 사이에서 조차 요즘 젊은이들에게 유행하는 말로 '루저(패배자)'가 양산되는 쾌속비행(快速飛行)의 세상이다.

신상(신상품)들, 특히 컴퓨터 소프트웨어, 앰피쓰리, 스마트폰, 테블릿PC등 젊은 코드 신상들이 하루가 다르게 미친 듯 쏟아져 나온다. 해마다 혜성처럼 나타나 시대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아이돌 스타들이 어느날 소리 소문없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도 이젠 낯설지 않다.

매일 매일 업데이트해도 '얼리 어답터'들을 사로잡는 새로운 디자인과 스펙을 갖춘 기계들이 '핫이슈',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 되어 나타났다가 또 그만큼의 속도로 빠르게 잊혀진다. 기계치 아날로그 세대들에게 강박관념을 안기는 이놈의 광속도!

그래도 나름대로 위안은 있다. '느리게 사는 즐거움'이라는 제목의 베스트셀러를 펴낸 '어니 J. 젤린스키'의 저서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우리가 걱정하는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은 사건, 30%는 일어났던 사건, 22%는 소소한 일들, 4%는 바꿀 수 없는 일들, 나머지 4% 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일이다."

즉 아이든, 어른이든 사람들이 학교나 사회생활하면서 마음속에 담고 있는 96%의 걱정이 쓸데없는 고민이라는 거다. 강박은 잠시 접어 두고 느리게 찾아 오는 소중한 가치를 한 번 챙길 참이다. 느리게 찾아 오는 사랑과 연인, 느리게 닿는 마음까지.

하긴 어차피 못 따라갈 거 기본만 하자는 역행주의도 있다. 우리 세대의 엄마들이 예전에 써먹던 수법이 다시 유행할 지도 모른다.

내 친구는 노트북 하나 사 달라 조르는 딸에게 "조금만 더 있다 더 좋은 거 나오면 사준다"는 말로 한 삼 년의 시간을 끌었단다.

사실 나도 요즘 아이폰, 갤럭시S, 옴니아등 애플, 삼성, 엘지등 글로벌기업의 대표 브랜드에서 쏟아져 나오는 스마트폰 기종들이 워낙 많아 오히려 마음이 느긋해졌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 더 업그레이된 좋은 놈, 더 싸게 사겠지 싶어 에라, 사고 싶은 마음 꾹 참고 좀 더 기다릴 참이다.

뛰는 놈 위를 나는 세상이지만 제 집을 지고 기는 느린 달팽이에게도 세상은 그 존재값을 기꺼이 치른다. 착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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