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농협중앙교육원 교수

나는 어렸을 때 개에게 물렸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개가 나타났다고 하면 울다가도 멈췄다. 회초리는 내 울음을 멈추게 하지 못했지만 개가 나타났다는 말 한마디로 울음보는 봉해졌고 행여 어디서 나타날까 늘 경계하며 다녔다. 내가 나이 들면서 무서워하고 경계하는 것이 또 하나 생겼다.

바로 스탠퍼드대 Paul David 교수와 Brian Arthur교수가 주창한 '경로(經路)의존성'이다. 경로의존성은 '한 번 일정한 경로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그 경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고의 관습'을 일컫는 말이다.

19세기 초 영국은 석탄 운반용 마차 선로를 지면에 깔아 첫 열차 선로를 만들었다. 이때 마차 선로의 폭은 2천 년 전 말 두 마리가 끄는 전차 폭에 맞춰 만들어진 로마 가도의 폭이 기준이 되었다고 한다. 2007년 8월 발사된 우주왕복선 엔데버호에 쓰인 추진 로켓의 너비는 4피트 8.5인치(143.51㎝)였다.

사실 기술자들은 추진 로켓을 좀 더 크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열차 선로 폭이 문제였다. 로켓은 기차로 옮겨지는데 중간에 터널을 통과하려면 너비를 열차 선로 폭에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2천 년 전 말 두 마리의 엉덩이 폭으로 길을 정한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말 두 마리의 엉덩이 폭과 같은 경로의존성을 품고 살아간다. 직장의 근무지를 옮긴 후 일을 하다보면 맘에 들지 않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전 사무소에 익숙해져 있던 경로의존성이 새로운 환경에 대한 비판의식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물론 새로운 곳에서의 일과 사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이처럼 경로의존성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예전 사무소의 경로의존성은 새로운 사무소의 경로의존성으로 대체되기 마련이다.

경로의존성의 또 다른 이름은 매너리즘이다. 혹자는 새로운 사무소에서 경로의존성이 생기기 전에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누구든 매너리즘에 빠지면 변화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정진홍씨는 "누구나 예외 없이 삶의 어느 길목에선가 자신의 인생배낭을 다시 싸고 꾸려야 할 때가 있다."고 말한다. 지금이 내 인생배낭에서 '비효율적인 경로의존성'은 털어내고 '효율적인 경로의존성'으로 채워야할 때란 생각이 든다. 비효율적인 경로의존성은 나쁜 습관이고 효율적인 경로의존성은 좋은 습관이다. 인생배낭에 들어있는 비효율적인 경로의존성과 나쁜 습관은 무겁고, 효율적인 경로의존성과 좋은 습관은 가볍다.

지금껏 메고 온 인생배낭에서 비효율적인 경로의존성과 나쁜 습관을 비워내면 인생길이 훨씬 가벼워질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멋과 삶의 멋은 효율적인 경로의존성과 좋은 습관에서 나온다. 내 인생배낭에 채우고 비울 '비효율적인 경로의존성'과 '효율적인 경로의존성'은 무엇인지 분류해서 짐을 다시 꾸리는 시간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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