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이상도 충주종합사회복지관장

예전에, 견성(見性)을 하신 한 노스님과 그런 노스님에게서 깨달음을 구해보려고 10년간을 따라다니며 배우고자 했던 젊은스님이 있었다.

전국각지를 유랑하면서 자신이 성취한 깨달음을 속세의 삶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노스님의 모습에서 젊은스님은 늘 깊은 감명을 받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옆 동네로 가기 위해 두 스님이 개울을 건너려던 찰나였다. 한 여인이 다가와서 젊은스님에게 이런 부탁을 하였다. "스님, 제가 여인의 몸이라서 혼자 저 깊은 개울물을 건너기가 어려우니, 저를 등에 업고 건너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그러자, 젊은스님은 "예끼! 여보쇼! 내가 깨달음을 구하는 승려인 줄 모르시오? 어찌 나에게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단 말이오?"하며 큰 소리로 여인을 나무랐다.

그러나 여인은 도저히 혼자서는 개울을 건널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무례한 줄 알면서도 노스님에게 같은 부탁을 하였다. 그랬더니 노스님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등을 획 돌리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업히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젊은스님은 그런 노스님을 보고 깜짝 놀랐다. 평소 깨달음을 실천하시고 여인을 멀리하신 스님이 어찌하여 젊은 여인을 보고 등에 업히라고 했는지 너무도 의아했기 때문이다.

개울을 건너는 내내 노스님이 여색을 탐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급기야 젊은 스님은 노스님이 여색만을 탐할 뿐, 실제 깨달음을 얻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의구심을 일으켰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노스님이 깨달음으로 자신에게 사기행각을 벌였고 자신이 속았다는 생각에 지난 10년간의 세월을 허비했다는 안타까움만이 가득했다. 이제는 그런 의구심이 분노로 바뀌어버렸다. 너무나 억울해서 분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지금이라도 당장 노스님에게 따지고 싶었다.

개울을 건너고 100미터쯤 지날 무렵 노스님이 "자네, 평소에는 그렇게 질문도 많고 쉼 없이 떠들어대더니 어찌하여 지금은 그리도 조용한 것인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젊은스님이 기다렸다는 듯 "어찌하여 깨달음을 얻으신 분이 여인을 그리도 좋아하실 수 있습니까? 당신은 정말 깨달음을 얻은 분이 맞으십니까? 지금까지 나를 속여왔다면 내 정녕코 당신을 가만두지 않겠습니다."라고 흥분하여 외쳤다.

노스님은 그 얘기를 가만히 들으시더니 빙그레 웃으시면서 "야! 이놈아! 나는 그 여인을 100미터 전에 내려 놓았는데 너는 아직도 그 여인을 머리에 이고 있느냐!"하고 일갈을 하셨다. 그 말씀에 젊은스님은 등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깨달은 사람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라는 자신만의 생각으로 10년 동안 깨달은 분이라고 여기며 따라다니다가 여인 한 번 업어준 것으로 깨닫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일으키고, 게다가 이러한 의구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분노로 변하게 하였으니 과연 스스로의 마음이 한 순간도 제자리에 머물지 못했음을 알고 깨닫는 바가 컸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생각과 마음으로 창조해 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세상은 오직 바라보는 자와 보여지는 것들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이라고 판단하는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는 중요한 메시지를 남긴다.

또한 이미 지나간 일들을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하고 거기에 매여 사는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남길 것이다. 한 번 흐른 물에는 두 번 다시 손을 씻을 수가 없는 법이다.

요즘처럼 갈등이 많이 내재된 사회에서는 더욱 더 내 생각과 다른 것을 존중할 줄 알고, 이미 지나간 일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지금 당장 나부터 내 머릿속에 얼마나 부질없는 생각들을 이고 있는지 돌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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