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최윤정 충북청주경실련 사무국장

세밑 청주의 한 아파트 단지 입주민들의 갈등 현장이 전국 뉴스를 탔다. 시행사 측이 미분양 세대를 이른바 '땡처리'하는 바람에 기존 입주민들이 손해를 보았다며 이삿짐 차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모습이었다. 100여명의 시민들이 입주지원센터에 찾아가 시행사 측에 거세게 항의했다는 화면도 보였다.

며칠 뒤 외지에 사시는 친정 엄마가 그 뉴스를 보셨다며, 얼마나 싸게 팔길래 그러느냐고 물으신다. "너희도 그리로 옮기지 그러니?" 헉! "엄마, 아무리 할인해 팔아도 우리에겐 그림의 떡이에요." 그 뉴스를 보시면서 10년 가까이 같은 아파트에 눌러 살고 있는 딸 생각이 나셨던 모양이다.

아파트 주변에 백화점과 아울렛이 들어서는 바람에 교통체증이 있어도 집값 떨어질 새라 쉬쉬 하던 입주민들이 이렇게 실력행사를 한 이유가 무엇일까?

일각에선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까지….'라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실제 입주민의 말을 들어보니 그게 아니다. 아파트의 할인율이 상상을 초월했다. 자신은 이돈 저돈 끌어모아 38평형 아파트를 분양받았는데, 지금 입주하는 사람들은 그 가격으로 59평대 아파트에 들어올 수 있다고 한다. 이러니 그야말로 "눈이 뒤집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문제는 모든 입주민들이 자기 돈으로 아파트를 산 게 아니라는 데 있다. 매달 은행 융자금은 꼬박꼬박 빠져나가는데, 시행사가 7억원에 달하는 아파트를 30% 할인해 5억원에 파는 바람에 입주민들은 졸지에 2억원의 자산을 날린 셈이 됐다는 것이다.

이후 언론 보도에 따르면 기존 입주민들에게도 시행사가 분양가의 5.4%내에서 할인혜택을 주는 것으로 합의했으나 구체적인 지급 내용을 둘러싸고 협상 과정이 순탄치 않은 듯하다.

'세상이 놀란 프로젝트'라며 ○○아파트도 아니고 ○○시티로 불렸던 이 아파트가 어쩌다 '땡처리'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됐을까?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시행사는 유명한 프로골퍼와 300만 달러(당시, 약 28억원)에 계약하고 TV광고까지 내보냈다.

분양 당시엔 서울 강남과 분당에서 버스를 대절해 내려온 투자자들이 몰려든다는 뉴스가 넘쳤다. 시행사 역시 '고급아파트 컨셉'이기에 전체 분양 물량의 40% 정도는 수도권 투자자가 될 것이라는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를 겪으면서 이른바 '투자'용으로 분양을 고려했던 이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미분양의 여파는 고스란히 입주민들에게 돌아갔다. 그 후 언론을 통해 기존 입주민들이 시행사를 상대로 '허위·과장 광고에 따른 계약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분양가의 10%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는 보도를 접했다. 그리고 최근, 시행사가 미분양을 처분한다며 대대적인 할인 분양에 나섰고, 입주민들의 항의가 잇따랐다.

이것이 비단 이 아파트만의 문제일까? 우리나라 아파트 시장이 '선분양 후입주' 시스템으로 유지되는 한, 어느 단지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시나리오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 모든 아파트의 분양가는 공사비, 대지비, 간접비 등의 항목으로 설명이 안된다.

철저하게 바로 직전에 분양된 아파트의 시세에 따른다. 분양가가 오른다 싶으면 건설사 브랜드나 입지 조건과 무관하게 일제히 올라간다. 당시 청주지역 아파트는 '행정수도 건설'이라는 호재를 맞아 분양가 고공행진을 거듭했고, 이 아파트는 평당 평균 분양가 1천140만원을 기록하며 고분양가의 정점을 찍었다.

그렇다면 '땡처리' 했다는 위 아파트의 실거래가는 얼마나 될까? 주택실거래가 공개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보니 이상한 점이 눈에 띈다. 문제가 된 59평형(전용면적 152.65㎡)의 11월 계약 건수가 130여 건에 달하는데, 실거래가는 최초 분양가의 95% 안팎으로 잡힌다. 어떻게 된 일일까?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일부 시행사들이 주택담보 대출에 유리할 뿐만 아니라, 되팔 때 양도차익을 줄일 수 있다며 '업(Up)계약'을 유도한다고 한다. 명백한 불법이다.

이제 아파트 분양으로 로또를 맞는 일은 없다. 뒤늦게 아파트 청약의 막차를 탄 가구들은 '마이너스 프리미엄'의 쓴맛을 봐야 했고, '하우스 푸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2013년 부동산 시장 전망, 여전히 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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