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박정원 건국대 언어교육원 교수

'빅브라더(Big Brother)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죠지 오웰은 소설 '1984년' 에서 이미 텔레스크린의 감시체제를 예언했다. 나는 책을 읽으며 정보를 독점해 거대 조직의 일상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가혹한 권력에 몸서리쳤고, 한편으로는 이것이 물리적인 힘을 지닌 사회조직 뿐 아니라 여러 가지 테크놀로지 형태로 현실화 된 것에 감탄했었다.

전체를 보호하기 위해 개인의 휴대폰뿐 아니라 인터넷 공간의 일상적인 감청과 검열을 가능하게 만드는 통신법 개정을 두고 우리는 빅브라더법이라는 이름을 붙여 사생활 침해를 외치며 논박했다. 그런데 소시민에 불과한 우리가 사실은 타인의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지켜볼 거대한 권력을 지닌 빅브라더라면?

영화 '트루먼 쇼'는 다분히 '1984년'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를 현대인의 관음적 본능을 충족시키는 역설적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트루먼이라는 인물의 일상은 24시간 TV로 중계된다. 그의 모든 환경은 방송국에 의해 연출된 상황이다. 트루먼의 가족과 친구들도 캐스팅 된 배우들이며 그의 사랑과 좌절과 희망의 감정마저도 TV를 통해 전 세계에 방송된다. 우리 모두가 빅브라더가 되고 싶어 하는 속내, 그것이 바로 우리의 관음적 본능일 것이다.

연출되지 않은 상황을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는 리얼리티 쇼가 그래서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다. 네덜란드의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인'빅 브라더 쇼'는 남녀 출연자 9명이 외딴집에서 펼치는 100일간의 생존경쟁 중계였다. 욕실, 화장실, 침실 까지 카메라와 마이크로폰이 설치됐고 이들의 행동과 대화는 매일 저녁 황금시간대에 방송을 탔다.

인터넷을 통해 24시간 생중계하기도 했다. 엄청난 시청률 덕에 사생활 침해와 저열한 관음증을 상업화한 것이라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유사 프로그램들이 전 세계적으로 끊임없이 제작되고 있다.

한 남녀 커플 앞에 갑자기 방송사 카메라가 들이닥친다. 당혹스러워 하는 남자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왜 바람을 피우냐고 다그치는 남자, 현장에 뛰어들어 욕설과 주먹을 날리는 아내… 한동안 케이블 방송으로 외도 현장을 급습하는 프로그램이 관심을 끌었다.

미리 짜여진 방송국 셋트에서 벗어나 일상, 혹은 야영장이나 정글에서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 출연자들을 속이고 당황해 하는 그들의 표정에 폭소하게 하는 몰카, 텔레스크린을 통해 그들의 온갖 정보를 숨어서 캐는 우리의 입맛에 맞춰 그들은 더욱 자극적인 벌칙과 더욱 위험한 모험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시청자들의 재미를 위해 연출을 가미한다는 소위 조작 쇼 논란도 적지 않다.

우리는 연신 좀 더 리얼하게 보여 달라고 화내면서도 또 우리 취향에 맞추라고 강요한다. 그러다가 싫증난다, 속았다, 현실에 안 맞는다 등등 이유로 하루아침에 출연자를 사라지게 만들고 프로그램을 아예 버려지게 하기도 한다. 어느 사이 우리는 빅브라더의 권력을 즐기는 데 길들여져 스스로 자신의 삶 보다는 타인의 삶을 내 통제권에 놓고 보려는 위험한 독재자가 되어 가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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