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류시호 시인·수필가

[중부매일] 오래전, 3학년 담임을 할 때 체격은 크지만 성격이 소극적인 주남이라는 학생이 있었다. 발표를 시켜도 머뭇거리고 발음도 좀 어눌했다.

운동장에서 체육수업을 하다가 교실에 있는 교구가 필요하여 반장을 시키려하니 주남이가 "선생님, 제가 빨리 갔다 오겠습니다"라 해서 열쇠를 주었다.

이렇게 인연이 되어 아침에 일찍 등교하는 주남이에게 학급 열쇠를 맡기며 열쇠반장에 임명했다.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담임에게 닥아 오고 조금씩 자신감을 갖고 발표도 잘 했다. 그러나 열쇠를 가끔씩 분실하여 몇 번을 새로 만들어 주었지만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해서 칭찬을 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실로 화분 하나가 배달되었다.

가게 아저씨가 가져온 화분 안에는 주남 어머니의 메모가 있었는데 '아들이 열쇠반장이 된 후 적극적으로 변하여 발표도 좋아졌고 성적도 올랐다며 감사하다'고 했다. 교사로서 아이에게 알맞은 임무를 찾아주었는데 부모님이 감사하다니 교사인 필자도 기분이 좋았다.

어느 듯 학년이 바뀌어 새로운 아이들과 수업을 하는데 가게 아저씨가 화분을 가져왔기에 우리 반 임원엄마가 보낸 것이겠지 했는데 전년도 우리 반이었던 주남 어머니가 보낸 것이었다. 새로운 학년이 되고 아이가 바뀌면 모르는 체 하는 게 학교현상인데 정말 감사함을 느꼈다. 이렇게 연결된 주남 어머니와 인연은 필자가 그 학교를 떠날 때까지, 매년 새 학기가 시작되면 화분을 챙겨주어서 많은 고마움을 느꼈다.

이처럼 학부모들이 수업 분위기를 조성하여 주면 교사로서 보람도 느끼고 더욱 열정을 가지고 아이들을 지도하게 된다. 교사들은 급변하는 주변 환경에서도 학생들의 인성이 잘 다듬어지고 창의력을 발휘하도록 노력을 한다. 그런데 인성은 적합성에서 창의력은 독창성에서 나오기에 아이들이 교실에서 창의성이 발휘되도록 잘 지도해야하며 통찰력도 필요하다.

올바른 교육은 교실의 수업활동 과정 속에서 스스로 진실을 찾아가는 것으로 그 길을 찾기 위해 교사의 역할은 소중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교사는 학생들이 진실한 삶,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간관계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능력은 15%, 인간관계 능력이 85%였다. '가치 있게 나이 드는 법'이라는 책의 저자 전혜성 박사는 미국에서 자식들에게 "덕이 재능을 이기게 되며 남을 생각하고 공동의 가치를 중시하라" 했다. 인간관계를 중시한 결과 여섯 자녀 모두가 하버드·예일대 박사에, 두 자녀는 미국 차관보, 딸은 예일대 학장으로 성장하였다.

교육학자 루소는 '자식을 불행하게 하는 확실한 방법은 언제나 무엇이든지 손에 넣을 수 있게 해주는 일이다'고 말했다.

요즘 우리 부모들이 자식이 원하는 것은 다 해주는 경우가 많은데, 자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온실 속 화초로 키우지 말고 역경(逆境)을 이겨내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전혜성 박사의 자식교육 방법과 교육학자 루소의 온실 속 화초로 키우지 말라고 하는 점은 아이들에게 메마른 지식보다 인간관계 능력을 길러 주자는 것이다. 아이들은 우리 사회 최후의 그린벨트로 독서나 과학탐구, 논술공부를 통하여 창조성과 협동심, 자기관리능력에 몰두하면 안정, 믿음, 인성도 생성되고 자신도 더욱 발전할 것이다. 가을의 시작, 창가의 국화화분을 보고 있노라면 주남 어머니의 정성이 생각나고, 지금은 중학생이 된 열쇠반장 그 아이가 스스로 행복한 삶,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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